[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음식은 사랑을 싣고

입력 2014-03-31 02:05


블로그 이웃인 언니·동생과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밥을 먹었다. 아이디만 봐도 반갑고 만나면 더 반가운 사이다. 맛있는 밥이란 서로 좋은 이들과 마음 편히 소찬을 나누는 훈훈한 자리를 말한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것 먹어 봐요, 요것도 맛 좀 봐요, 하면서.

상차림이 주로 나물이다 보니 어머니 생각이 저절로 난다. 요즘은 치아가 부실하고 건강이 여의치 않아 좋아하는 나물을 통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이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일정 음식에는 그 음식을 좋아한 사람의 기억이 깃들기 마련이다.

음식과 연계된 기억은 깊고 따뜻하며 때로 아프다. 없이 살던 시절의 추억이 많아서이기 때문이리라. 전에 어머니는 ‘우거지 지진 게 어찌나 맛있던지 밥 한 그릇 다 비웠다’며 전화하시곤 했다. 우리 딸이 좋아하며 잘 먹는 거라서 먹는 내내 우리 딸 생각을 했단다. 세상에 얘, 그게 뭐 좋은 음식이라고 말이다.

딸인들 안 그러랴. 취라도 데쳐 무치노라면 사십오륙 년 전 어머니가 가게물건 떼러 가는 길에 동행한 날들이 생각난다.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 모습과 어머니의 모진 고생이 함께 떠올라 지금도 마음이 아뜩해지는 듯하며 시리다. 그때 동대문시장 2층 허름한 밥집의 몇 백 원짜리 고봉 양푼 밥과 풍성한 취나물 반찬에 모녀는 행복하였다.

언니·동생이 돌아간 지 한참 후인 늦은 밤. 한바탕 또 늘었을 몸무게를 다스려보자고 러닝머신에 올라간다. 텔레비전을 켜 채널을 돌리다가 정지.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배추밭을 배경으로 늙은 농부가 말한다. 개척하던 당시엔 아무것도 없었지요. 눈이라도 와서 밀가루 배급이 끊어지면 며칠을 온 식구가 그저 굶는 거예요.

장면이 바뀌어 군데군데 팬 흙집 앞에서 여든 다 된 노인도 하필 말한다. 쌀이 있간요. 태어나서 쌀 한 말을 못 먹고 시집간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는 냉수 몇 사발 마시며, 난 먹었다 어서들 먹어라, 했어요. 물마시듯 굶는 걸 모르고 나는 우리 엄마가 정말 늘 먼저 잡순 줄 알았어요. 나는 우리 엄마가 정말 먼저 잡순 줄 알았어요. 사실은 내 배가 고프니 엄마가 잡쉈는지 아닌지 생각지도 않았어요. 멀건 나물죽 한번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노인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한 손으로는 눈가를 훔친다.

낮에 웃음으로 버무려 먹은 맛있던 밥이 러닝머신 위에서 뒤늦게 목에 걸려 깔깔하다. 이런, 이런, 눈물까지….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