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희망과 절망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
입력 2014-03-28 02:21
옥상의 정치/김만석 외/갈무리
옥상. 허공으로 한 발만 내딛으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점에서 이곳은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된다.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고, 삶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제발 날 좀 봐 달라’며 마지막 외침의 장소로 이곳을 택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2014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옥상은 과연 어떤 공간일까. 한국인의 거주 공간에서 옥상이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후반쯤이다. 그 전까지 전통적인 가옥은 마당이 있었고, 경사진 형태의 지붕이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당 있는 집들이 점점 사라졌고,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무수한 옥상들이 탄생했다.
옥상 위에 딸린 옥탑방이 한때 도시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청년과 노동자들의 희망의 공간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파트나 학교 같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에는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옥상에 대한 사회 인식이 위험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문을 따고 옥상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누구일까.
책은 옥상이란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재를 돌아보는 기획물이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국내의 다양한 지역과 일본에서 활동하는 젊은 지식인 비평가 예술가 큐레이터 등이 힘을 모아 만든 ‘공동저작’이다. 지난 14일부터 광주 ‘미테-우그로’, 대구 ‘삼덕상회/장거살롱’, 대전의 ‘스페이스 씨’, 부산의 ‘공간 힘’, 서울의 ‘이포’ 등 여러 도시의 대안공간에서 이뤄진 협업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다.
‘공간 힘’의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김만석 박사는 “옥상을 모종의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서식지로 이해하면서 이를 일종의 ‘학(學)’의 형식으로 확장할 때, 우리 사회의 굴절된 삶의 풍경, 이웃과의 관계, 예술에 대한 태도에 이르는 여러 문제들을 다르게 바라 볼 관점을 확보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지금까지 억압돼있던 논의들을 풍성하게 구성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옥상이라는 조건 속에서 공동체와 사회의 갈등을, 신자유주의적 조건 아래에서 희망과 절망의 교차를, 나와 이웃 사이의 네트워크를, 불가능한 만남을 모색하려는 고투의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다양한 시선으로 옥상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는 ‘잉여로서의 옥상과 잉여정치학의 전망’이란 글을 통해 옥상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 옥상의 참사, 2009년 7월 쌍용차 평택 도장공장 옥상에서 이뤄진 경찰들의 파업 노동자 진압, 2011년 1월 시작된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제주도 강정의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며 망루에 오른 강정 주민들, 밀양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절벽에 오른 밀양 주민들을 상기시키며 “이들은 왜 다른 방법이 아니라 옥상으로, 탑으로, 절벽으로, 망루로 오르는 것을 선택했을까”라고 묻는다. 그는 “옥상은 자기 자신을 잉여집단으로 만들어 추방하는 현존하는 질서의 성격과 본질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해야 할 장소”라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장소, 아무것도 아닐 장소”라고 분석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각각의 행동들이 하나의 큰 대안이 되지 못하고 파편화되고 있는 현실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20세기 노동해방이나 사회주의와 같은 공통어를 갖지 못했기에, 각각의 투쟁들은 각자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대안체제적인 공통성의 발견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밖에 ‘옥상의 고고학: 산, 옥상, 지하’에서 고영란 일본 니혼대 교수는 일본의 현대 소설에 나타난 풍경을 통해 일본의 옥상이 어떻게 폐쇄적으로 구성됐는지를 소개한다. 현장평론가 이성혁은 ‘극한의 저항과 시적 카이로스의 열림’이란 글에서 고공 농성자들을 방치하는 한국의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시로 저항하는 시인들의 노래를 통해 옥상의 이미지를 살펴본다. 또 민중미술의 거장 홍성담과의 대담, ‘옥상의 정치’ 전시회 기획담과 전시 이미지를 통해 이 시대, 한국의 옥상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직시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