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교회를 통하다] 300만명 대탈출 시대…서독 목사들은 동독으로 ‘고난의 길’

입력 2014-03-24 04:01 수정 2014-03-24 14:51


(1) 통일의 밀알, 요나의 길 택한 목사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의 25일 독일 국빈 방문을 계기로 독일의 경험을 거울삼아 통일을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서독 교회가 독일 통일 과정에서 했던 역할을 조명하고, 한국 교회가 통일선교를 위해 감당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인간의 이념과 당적 이익이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를 막아서는 안 된다. 교회는 여기에 저항해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아버지 호르스트 카스너 목사는 1954년 서독 함부르크를 떠나 동독으로 향하면서 평화를 위한 교회의 소명을 설파했다.

분단 직후 카스너 목사처럼 동독으로 ‘요나의 길’을 떠난 서독 목사들이 있었다. 300만명의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대거 탈출하던 시기에 고난의 길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소명의식을 갖고 신앙의 불모지로 나아갔던 그들의 순교자적 결단은 오늘날 독일 통일의 밀알이 됐다.

요나의 길을 택한 목사는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 정권과 싸워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이들과 다른 하나는 기독교 사회주의 실현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일부 사회주의 성향의 목사들이다. 당시 서독 교회들은 동독으로 건너가 사회주의 정권과 맞서 싸운 목사들을 높이 평가했다. 후자는 사회주의와 타협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사회주의 속의 교회’(Kirche im Sozialismus)로서 종교적 성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제한적이나마 자유로운 공간으로 서독의 매체를 접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교회를 찾게 했고, 결국 서방으로 나아가는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오스카 브뤼제비츠 목사가 전자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서독에서 목회생활을 하다 동독으로 건너간 뒤 사회주의 정권에 맞서 싸우다 1976년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독일 개신교회는 동독 정권의 종교 탄압을 알리기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브뤼제비츠 목사의 희생이 1989년 대규모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동독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다.

카스너 목사는 1926년 베를린 팡코프 지역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공부하는 중에도 항상 자신의 고향인 동독에서 목회하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지역에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동독행을 택했다. 1954년 카스너 목사의 첫 사역지는 브란덴부르크 프리그니츠에 있는 루터교회였다. 그곳에서 청년부 담당 목사로 일했다. 메르켈 총리가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지 6주 만의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이 함부르크에서 6주 동안이라도 살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고백했다. 아버지가 택한 요나의 길이 메르켈 총리에게는 동독과 서독을 아우르는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서 든든한 배경이 됐다.

카스너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지역 목회자 중에서 비판적 의식을 가진 목회자였기 때문에 비밀경찰은 항상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했다. 그는 히틀러 독재에 저항하다 사형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삶을 강조하며 기독교인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주장했다. 1945년 10월 교회가 나치에 협조했던 죄를 고백하고 교회가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슈투트가르트의 고백교회 전통이 동독 교회에서 ‘공개적인 발언자’ 역할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롤란트 가이펠 목사도 1969년 서독 마인츠에서 동독으로 이주했다. 그는 동독 튀링겐주에 있는 도시 게라에서 문학·예술·환경 문제를 연구하는 청소년 모임을 주도했다. 교회 내 전형적인 공동체 모임을 통일을 위한 범도시적 모임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는 1981년 “칼을 쳐서 보습으로”라는 말을 외치며 공동체 모임을 범사회 전체 평화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가이펠 목사는 이듬해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또 동독 주민들의 통일 열기가 끓어오르던 1989년 변화를 요구하는 게라 시민들의 집회에서 중심 역할을 했고, 1990년에는 시민위원회를 조직해 동독 비밀경찰 조직인 슈타지(Stasi)의 만행과 죄상을 폭로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정부로부터 연방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독일전문가인 김택환 경기대 교수는 23일 “서독에서 동독으로 건너간 목사들은 종교 탄압 속에서도 일종의 성지였던 교회를 지켜내며 동독 정권이 무너지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Key Word-요나의 길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앗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니느웨)로 가서 이교도를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지만 겁이 나서 타르시스(다시스)로 달아나려고 했다. 타르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을 때 하나님이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켜 사흘간 물고기 배 속에 갇혔으나 회개함으로 살아난 요나는 하나님의 두 번째 명에 따라 니네베로 나아가 적국에 파멸이 다가왔다고 외친다. 요나의 길은 소명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적지로 나아가는 고난의 길에 비유된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