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한·미·일 정상회담 열리기는 하지만
입력 2014-03-24 02:23
국가 정상 간의 만남에는 여러 형식이 있다. 양자 회담, 다자 회담 등.
24일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시작되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는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세계 각국 지도자가 다양한 형태의 별도 정상외교를 펼친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3자 정상회담을 갖기로 돼 있다.
역시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는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취임 이후 단 한번도 별도 회담을 하지 않았던 아베 총리를 바로 옆자리에 놓고 회담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라면 취임 전부터 시시때때로 일본의 한반도 침략 역사를 부정해온 장본인이다. 그런 연유로 박 대통령은 일찌감치 “일본 정부가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을 정도다. 이번 회담이 성사된 계기도 아베 총리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제 강점을 시인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 없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아베 총리의 태도 변화 뒤에는 미국이 숨어 있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대국(大國)주의 노선이 계속 노골화되는 마당에 한·일 관계가 자꾸 나빠지니 조바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고, 한·일 관계 악화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아베 정권의 과거사 도발임을 자각하면서 미국은 일본 정부를 압박한 것이다.
문제는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을 대하는 세 국가의 스탠스가 상당히 상이하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어떻게든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성사시켜 악화일로인 양국 관계를 풀어보고 싶어 한다. 미국은 마치 조정자와도 같은 역할을 할 태세다. 우리 정부는 사실 그다지 아쉬울 게 없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아베 정권은 과거사 왜곡이라는 악수를 둘 것이고, 그러면 국제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입지는 더 커진다. 사과 받지 못한 피해자는 수많은 친구들이 생기지만, 잘못 해놓고 반성조차 없는 가해자는 ‘왕따’ 신세인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청와대는 아베 정권이 헤이그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거듭 자가발전을 할 때도 느긋했다. 외교 용어로 ‘NCND(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전략이었다. 박 대통령이 헤이그에 도착한 뒤에 아베 총리의 애원과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에 마지못해 회담에 응하는 형식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주 초 일본 언론들이 일제히 ‘한국이 3자 정상회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대서특필하자, 청와대는 매우 불편해했다. 국내 언론도 아닌 일본 신문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인용했으니 말이다. 청와대는 이 정보의 제공자가 평소 국내 상주 일본 특파원들과 자주 접촉하는 외교부 내부의 누군가라고 추정했음 직하다.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은 취재진이 ‘3자 정상회담을 진짜 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외교부에 물어보라”고만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엔 외교부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우리 대통령의 계획을 일본에 몰래 알려놓고 발뺌을 하느냐”는 것이다. 과거사 반성 문제만 나오면 철면피 ‘맨얼굴’을 드러내는 아베 총리와의 정상외교가 무슨 자랑할 일도 아닌데, 국내 언론도 아닌 일본 언론이 먼저 떠들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발뺌하느냐는 질책인 셈이다.
외교부는 지난 21일 마지못해 한·미·일 정상회담 확정사실을 발표했다. 그러고도 뒤에선 “대통령의 일정을 우리가 밝히는 게 맞느냐”는 불평을 쏟아냈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