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초보엄마 탈북자 김미소씨의 삶 “육아 힘들때 北 가족 생각 간절”
입력 2014-03-22 02:57
혈혈단신 탈북자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박성준(31·가명)·김미소(32)씨 부부. 세 살, 100일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지난 18일 김씨를 만나 한국에 정착하며 4년차 초보 엄마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탈북자 부모로 한국에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다문화가정보다 말이 잘 통한다는 이점이 있을 뿐, 여느 초보 엄마, 아빠가 느끼는 어려움과 별단 다르지 않아요. 임신하고 처음에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보건소 프로그램에 참여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음악태교나 출생 후 예방접종, 모유수유, 아이가 울 때 대처법 등은 그런 프로그램에서 배웠다. 그럼에도 부부가 합심해 두 아이를 키웠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모유수유를 하며 젖몸살로 심하게 고생할 땐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을 절로 했다. “젖몸살로 열이 39∼40도를 올라가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애를 봐야하고 젖도 먹여야 하는데, ‘옆에 엄마가 계셨다면’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씨는 해물을 좋아해 해물탕을 많이 먹지만, 정작 아이는 해물 알러지가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애가 밤에 열이 나서 우는데 어떻게 할 줄 몰라 아기를 안고 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땐 특히 힘들었다. “빨리 돈을 모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었는데,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하자 괴로웠어요.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의 용기와 격려가 힘이 됐어요.”
김씨는 자녀를 키우다 궁금한 게 있으면 교회 ‘선배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맘들은 자신의 일인냥 잘 챙겨줬다. 지금은 그들의 조언이 자녀를 키우는 데 큰 힘이다. “주님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저희 부부에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다.”
김씨는 2006년 탈북해 2010년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북한에서 생계를 위해 불법CD 판매를 하다 보위부에 붙잡혀 간신히 풀려났지만, 또다시 장사하다 붙잡혀 총살 위기에서 탈북을 결심했다. 중국, 태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 과정에서 김씨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태국 수용소에서 조용히 울리는 노랫소리를 듣는데 왠지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찡하더라고요. 노래 부른 사람한테 ‘무슨 노래냐’고 물었더니 찬송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됐고 찬송가를 배웠어요. 그리고 성경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고요. 국정원에서도 주일을 지켰고 하나원에서는 새벽기도를 드리고 찬양팀에서 활동했어요. 선교사의 비전도 품게 됐습니다.”
남편은 국정원에서 만났다. 십자가를 만들어 김씨에게 주며 프러포즈를 했다. 사실 김씨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프러포즈를 받고 김씨는 3박4일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다. 그곳에서 “저이는 너의 짝이다”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2011년 결혼했다.
김씨에게는 훌륭한 엄마, 훌륭한 간호사, 훌륭한 상담사의 꿈이 있다. 북한에서 간호대학에 합격했지만 형편이 안돼 포기했다. 한국에 들어와 6개월간 정착 훈련을 마친 뒤 주야로 공부하며 1년 만에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상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땄다. 인하대 간호학과에도 합격했지만 임신을 해서 포기했다.
“앞으로 신학을 공부해서 선교사의 꿈도 이루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아요.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십자가를 놓지 않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믿음이 저희 부부에겐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늘 하나님의 감사함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