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국 정상회담 성격 규정 싸고 고심… 북핵 공조 긍정적, 아베 ‘도발’땐 쓸 카드 없어
입력 2014-03-21 02:26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다음 주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국 미국 일본의 3국 정상회담 성격 규정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가 고심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갖는 양면성 때문이다.
3국 정상회담은 동북아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한편으론 향후 한·일 관계 설정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자리다. 동북아 안보 협력 틀의 핵심 당사국인 한·미·일 3국이 안보를 의제로 논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뤄질 한·일 정상 간 만남과 이후 우리 정부가 견지해야 할 스탠스는 현재 분위기상 미묘할 수밖에 없다.
한·미·일 정상회담은 우리 외교의 핵심 과제인 동북아 평화안보에 대한 논의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이 부분은 우리 정부뿐 아니라 미국, 일본까지 3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특히 미국으로선 한·일 양국이 과거사를 이유로 현재처럼 경색 국면을 이어갈 경우 자국의 아시아 전략에 커다란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어 한·일 관계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미국이 우리 정부에 정상회담 참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3국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 미·일동맹의 굳건함과 한·미·일 3각 공조 틀을 동시에 재확인하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이런 차원의 정상회담이라면 우리 정부로서도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
그러나 3국 정상회담 틀 내에서 이뤄지는 한·일 두 정상 만남에선 극명하게 양면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양국 정부 출범 이후 1년여 만에 처음 만나는 것으로 한·미·일 3각 공조 속에 한·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 냉각된 한·일 관계를 장기간 끌고 가는 것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상호 간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여러 과거사 현안에 대해 전향적이고도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기도 전에 한·일 정상의 만남이 이뤄지면 우리 정부의 대일 관계 정립 방향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태도 변화가 없이는 정상회담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특히 아베 총리가 박 대통령과 만난 뒤 야스쿠니 신사를 다시 참배하거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과거사 도발이 재연된다면 우리 정부로선 일본에 꺼내들 수 있는 카드를 그냥 허비하는 셈이 된다. 최근 아베 총리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이는 정부가 원하는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양국 관계 개선에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일 “북핵 등 안보 이슈를 주로 논의하는 다자 정상회담과 양자 간 현안을 폭넓게 논의하는 양자회담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모든 걸 신중히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