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렬한 파탄을 준비하는 사랑의 시편”… 황학주 시인 열 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입력 2014-03-21 02:20


황학주(60·사진)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는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떨어지는 장미나 동백처럼 떨어짐의 중력을 자장으로 거느린다.

“한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 한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 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 (중략)// 예쁘기만 한 청첩이여/ 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 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얼어붙은 시’ 부분)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뒤 그이로부터 청첩장을 받은 사연이 읽혀진다. 한 때 내 손 안의 사랑이었다가 내 손을 떠나 다른 이의 손에 넘겨주는 비애의 사랑을 시인은 파탄이라고 말하고 있다.

황학주의 사랑법은 장렬한 이별과 애끓는 파탄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그 주된 정서는 사랑을 시작하는 지점이 아니라 사랑이 끝난 후로 그러모아지는데 흔히 그를 ‘사랑과 상처의 시인’으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보태 그는 파탄의 사랑을 그만의 독특한 어법과 돌발적인 비유로 장식한다. 사랑의 잔해들이 발밑으로 떨어지는 하강의 이미지가 그것.

“떼베짜는새가 떨어질 때 머물던 가지는 휘어져 있었다/ 눈이 아프도록 작은 새의 혈흔을 기억하기에는 늦은 저녁이고/ 새의 눈빛을 그리는 말 중에/ 숨소리 낮은 잎들은 떨어져 내렸다//(중략)// 보내는 마음이 보내는 마음으로 보일 때까지/ 가지에서 찢어지며/ 떼베짜는새는 떼베짜는새들 옆에 누웠다”(‘보내는 마음’ 부분)

떼베짜는새는 남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멧새과의 작은 새인데, 그동안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울 만큼 아프리카에 각별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황학주는 가지를 차고 날아가는 이 작은 새의 동작에서 자신이 떠나보낸 연인을 연상해 낸다. 자신을 찢어진 가지에 비유하는 이 지극한 슬픔이야말로 한국적 이별의 정서를 처음으로 열어 보인 소월 이후 희미해지고 있는 파탄의 사랑법으로의 회귀일 것이다.

“있잖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한 얼굴은 떠오르지만 그 얼굴은 들리지 않는다/ 한 얼굴은 들리지만 그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귀담아들었냐는 표정으로/ 당신을 떨어져 쌓인다/ 자신의 말을 자신의 귀에 모두 주워담아 떠날 날을 기다리듯이”(‘말한다, 나의 아름다운 우주목’ 부분)

주변의 모든 풍경에서 사랑과 상처의 배타적인 관계를 읽어내고 있는 황학주의 시편들이 교환가치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사랑법을 회복하는 진성의 텍스트가 되길 기대해본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