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기본급 중심으로 단순화… 호봉제 자동 상승분 줄여나간다
입력 2014-03-20 02:47
정부가 근대화 이후 줄곧 유지된 ‘기본급+수당’ 방식에 메스를 들이댔다. 고용노동부가 19일 공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복잡한 수당 대신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근로기간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호봉제) 대신 성과급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구성됐다.
◇연공급 완화, 직무·직능급 도입=정부가 매뉴얼을 통해 가장 강조한 부분은 연공성 완화다. 국내 100인 이상 사업장의 71.9%, 300인 이상 사업장의 79.6%가 연공급을 채택하고 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중장년층 근로자 비율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임금 총액도 높아진다. 그러나 임금이 오른 만큼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는다는 게 기업의 불만이었다. 정년 60세 법제화와 대법원의 통상임금 확대 판결로 인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임금체계 개편 이슈를 터뜨린 형국이다.
정부가 첫 번째로 제시한 연공급 개편 방향은 입사 초기 근로자와 중장년 근로자의 호봉승급 배분율을 낮춘 구조다. 정년 60세 법제화 이전에 정부가 기업에 권고했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와 유사한 형태다. 근로자는 오래도록 일할 수 있고 기업도 급격한 인건비 증가에 따른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직능급은 직무의 난이도·숙련도·자격에 따라 임금 등급을 정하고 근로자들의 임금 분포, 임금 수준을 체크한 뒤 승급액, 임금등급별 상한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직무급은 회사에서 부장, 차장 등 직무에 따라 지급하는 급여다. 모든 직무의 내용과 중요도, 난이도 및 근무환경 조건 등을 분석하고 평가해 임금이 결정된다. 그러나 직능급과 직무급 모두 회사의 평가에 따라 근로자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정한 평가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직종별로 어떻게 적용되나=노동부가 매뉴얼에서 비중 있게 다룬 은행 사무직의 임금체계는 호봉제를 통해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은행권은 명예퇴직 제도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가 유명무실하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시중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7000만∼9000만원으로 15년차 차장급의 경우 1억원이 넘는다. 실적이나 능력이 아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은행들이 사무직 근로자들의 기본급을 숙련급으로 지급하다가 40세 이후엔 역할급과 직무급으로 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한다. 숙련급 체제에서는 숙련상승, 역할급에선 직급상승, 직무급에서는 직무 전환에 따라 임금 수준이 결정된다. 직능적 요소와 성과 차이를 평가해 차등적으로 임금을 지급하라는 권고다.
자동차 제조업체 생산직 근로자는 기본급이 낮고 시간외수당이 많은 임금체계를 적용받고 있다. 대기업들은 호봉제를 적용받으며 높은 임금을 받고 있지만 노조는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노동부는 자동차 업계의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선 무엇보다 완성차 업체의 연공적 기존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장년층 근로자들이 직무 전환을 통해 추가적인 정년연장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호봉제 및 직무급 임금체계에 생산성을 반영한 숙련급으로 전환한 뒤 생산성이 떨어지는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직무에 따른 직무급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노동부는 기본급에서 호봉급 비중이 56%를 차지하는 병원 간호사들은 고과에 따라 호봉이 차등 상승하는 비중이 23.8%에 불과해 성과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기본급을 숙련급으로 전환하고 중장년 이후에는 직무급을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박화진 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은 “산업 현장에서 임금체계 매뉴얼을 토대로 노사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올해엔 조선업 생산직과 IT 제조업, 운수업의 임금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