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20일] 환경을 넘어서는 기쁨

입력 2014-03-20 02:39


찬송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95장(통82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시편 90편 10~17절


말씀 : 오늘 말씀은 모세의 기도이며 찬양입니다. 시편의 주제는 ‘기쁨을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그 배경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가나안 정탐꾼 사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10명은 ‘그들은 키가 크고 수가 많으며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그들과 싸우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라는 보고를 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새도록 통곡하며 모세를 원망합니다. 차라리 지도자를 바꾸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우리가 모세라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모세는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를 공동번역 성경은 ‘동틀 녘에 당신의 사랑으로 한껏 배불러 평생토록 기뻐 뛰며 노래하게 하소서’라고 번역합니다. 기쁨이 없는 시간, 기뻐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 기뻐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어떻게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기쁜 삶을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힌 상태로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고백합니다. ‘기뻐하리라’는 것은 의지적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회에도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웃으면 즐거운 기분이 되는가, 아니면 즐거운 기분이 웃음을 짓게 하는가’라는 논쟁이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억지로 감정 표현을 흉내낼 때 몸은 그 감정에도 생리적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면 몸에서 행복을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반대라는 것입니다. 결국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질병에 걸렸을 때 그 질병을 위해 기도했지만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기도할 때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는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때 마음이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가지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병이 낫지 않는 것도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때뿐이 아닙니다. 비난 받을 때도 기뻐하고 쫓겨 도망 다닐 때도 기뻐했습니다.

‘기뻐할 조건이 있어야 기뻐하지요’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능력은 기뻐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감으로 환경과 여건을 뛰어넘어서 주시는 주님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 중에라도 기쁨의 의지를 잃어버리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기도 : 좋으신 하나님, 언제나 우리의 입술에서 찬송이 흐르게 하시고, 심령에 샘솟는 기쁨을 더하여 주옵소서. 찬송할 때 어둠이 물러가고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맛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병훈 목사(상계광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