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병 가족의 눈물] 치료비 건보혜택 받아도… 3대 비급여 부문 지출 ‘눈덩이’

입력 2014-03-18 03:08 수정 2014-03-18 10:29


주부 박지숙(가명·45)씨는 근이영양증을 앓는 두 아들을 돌보고 있다. 온몸의 근력이 점점 쇠약해지다 심장 근육까지 약해지면 호흡 기능이 정지돼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모계 유전일 수 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할 여유도 없었다. 병과의 사투는 현실이다. 돈이 필요했다. 검사비와 입원비, 선택진료비, 약값, 간병비, 보조기구비…. 통장에 구멍이라도 난 듯 돈은 줄줄 빠져나갔다. 남편이 매일 새벽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하지만 빚은 늘어만 가고 있다. 박씨 가정은 매달 수백만원의 치료비와 간병비로 파산 직전이다.

이성인(가명·50·여)씨의 딸(21)은 돌 무렵 척추성근위축 진단을 받고 20년째 투병 중이다. 처음 발병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났다. 그 뒤 수년간 아이 치료비로 억대의 돈이 들어갔지만 정부 지원은 전혀 없었다. 지인이 “이혼하면 한부모가정이 돼서 정부 지원을 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곧장 남편과 이혼했다. 이씨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자 동사무소에서는 “(전 남편이 주는) 양육비가 있으니 월 40만원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치료비·간병비는 고사하고 20만원 월세를 내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이들처럼 가족 중 누군가가 희귀난치성 질환에 걸리면 가정 붕괴는 시간문제다(국민일보 3월 17일자 1·3면 참조). 그저 몹쓸 병에 걸렸을 뿐인데 한 가정이 파탄나는 일.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이런 비극만큼은 막겠다며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을 내걸었다. 희귀난치병 등 4대 중증질환자들이 부담하는 치료비를 모두 건강보험에 포함시켜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게 공약의 요지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4대 중증질환 보험 보장률은 89.8%다. 치료비 중 90% 가까이 보험 적용을 받으므로 부담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그래픽 참조).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수치와 비슷하다. 박 대통령은 당시 2013년까지 85%, 2014년 90%, 2015년 95%에 이어 2016년 100%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공약이 이행되는 듯하다. 그러나 높은 수치 속에는 함정이 있었다.

먼저 정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보장률 90% 속에는 암·심장·뇌혈관 질환자들까지 포함돼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자들이 따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에서 4대 중증질환과 관련된 치료가 이뤄지면 질병코드로 ‘V’가 표시된다. 이를 전부 묶어서 산출된 수치다. 희귀난치성 질환자들만 산출하려면 다시 통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3대 비급여 부문에서 당하는 고통도 여전하다. 선택진료제, 간병비, 상급병실료 등 3대 비급여에서 지출되는 돈은 희귀난치성 질환자를 괴롭히는 가장 큰 요소다. 복지부는 3대 비급여 항목 개선과 건강보험 보장률 개선을 구분해 ‘투 트랙’으로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선택진료제의 경우 복지부는 선택진료비를 받는 의사 수를 줄이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희귀난치성 질환은 그 병을 아는 의사가 드물어 소수의 전문 의료진, 즉 ‘선택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선택진료제의 점진적 개선을 통해선 이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기약조차 하기 어렵다.

9세 때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아 올해로 40세가 된 아들을 돌보는 주유희 근이영양증환우모임 회장의 경우 심장, 폐기능, 호흡관리 등 관련 진료가 모두 선택진료다. 다발성경화증을 앓는 신현민 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의 사정도 비슷하다. 신씨는 “희귀난치성 질환은 진단도 쉽지 않다. 해당 분야 권위자가 아니면 진료가 불가능한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높인다곤 했지만 우리는 모든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말했다.

혜택이 축소된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까지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은 ‘응급환자’로 분류돼 응급실 진료를 받을 때 응급관리료를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많게는 4만8000원에 달하는 응급관리료의 10%만 본인이 부담했다. 그러나 이 항목이 지난해 10월 전액 비급여로 전환됐다. 이용우 CRPS환우회장은 “극심한 통증으로 마약성 신경안정제를 투약해야 하는 환자들은 많게는 한 달에 8번 응급실에 간다”며 “기초 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 외에도 월 40만원 정도를 평생 지불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절망스러운 조치”라고 말했다.

이도경 정부경 전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