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생물 활용해 AI 닭 매몰한 세종시 등곡마을 ‘핏빛 침출수’ 인근 개울서 유출

입력 2014-03-18 03:02


마을을 관통하는 개울은 악취와 함께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17일 오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세종시 부강면 등곡마을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을씨년스러웠다. 정부세종청사에서 15㎞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지난주 살처분한 닭 39만 마리를 ‘호기성 호열성 미생물 처리방법’으로 매몰했다(국민일보 3월 17일자 2면 참조).

그러나 매몰 작업이 완료된 다음날인 15일부터 개울은 악취를 풍기면서 붉은 빛으로 변했다. 이 개울을 따라 올라가보니 살처분 매몰지와 연결됐다. 50여평 크기의 매몰지에는 얕은 구덩이 2개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고 그 주위를 흰색 방호복을 입은 방역 관계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 삼거리에서 갈라지는 개울물을 비교해보니 매몰지에서 내려오는 개울물과 매몰지와 무관한 곳에서 흐르는 물은 색깔과 냄새가 180도 달랐다.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나오고 있다고 기자에게 제보를 한 주민은 “10년 넘게 이 마을에 살면서 이 개울이 지금처럼 악취와 함께 핏빛을 띤 것은 처음”이라며 “미생물을 활용하는 새로운 공법으로 매몰한다고 할 때부터 불안했다”고 말했다.

세종시와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종시 방역 당국은 지난주 매몰 작업 직전에 살처분된 닭을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 대형 저장조에 사체를 넣는 기존 방식 대신 미생물을 활용한 새로운 방식으로 매몰할 뜻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 침출수와 악취를 염려하는 주민들에게 방역 당국은 기존 방식보다 더욱 안전하다고 설득했다. 일부 주민들은 마을과 지척에 있는 언덕배기에 매몰지를 조성한 것을 보고 한때 매몰 작업을 막기까지 했다. 이 마을은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고 침출수를 머금은 개울물은 금강으로 흘러든다.

한 주민은 “‘만약 침출수가 나오면 생수 수만통을 공급하겠다’고 방역 당국이 약속했다”고 전했다.

세종시는 마을 주민들의 침출수 발생 민원을 받고 사후 보강조치에 착수했다. 세종시 관계자는 “돌발사태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사후조치를 진행 중”이라며 “식수로 이용되는 물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글·사진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