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훈]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와 한국의 꿈
입력 2014-03-18 02:51
인류 문명은 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문명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통해 새로운 문명이 출현하고 전파되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가 전개된 것은 길이 문명교류의 통로임을 입증한다.
지금 유라시아에는 ‘국제철도 경쟁(Great Rail Game)’이 진행 중이다. 중국은 최근 중국횡단철도(TCR)를 중앙아시아로 연장하고 유럽까지 연결되는 신(新)실크로드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연결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부산까지 연장하려 한다. 유럽연합은 오래전부터 동유럽까지 연결하는 유럽통합철도망을 구축해 왔다.
유라시아의 국제철도 경쟁은 자국의 성장을 촉진하고 세계 경제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부존자원이 많고 새로운 성장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앙아시아를 공략하고 국제철도 수송로를 주도하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중국은 내륙지역을 개발하고,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개발해 중국 경제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고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추진 중이다.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만들어 거대한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세계 성장엔진화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한국이 유라시아를 개방과 공존의 공간으로 바꾸어 경제교류, 국제교통망, 에너지네트워크 등 분야에 국제협력을 주도한다는 야심 찬 제안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서 핵심과제는 SRX 구축이다. 한반도 부산에서 TSR, TCR을 이용해 유럽까지 연결하는 철도망으로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하는 필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SRX가 실현되면 우리나라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우선 한국이 세계 최대 규모인 유라시아 경제권의 관문이 될 수 있다. 유럽, 중앙아시아, 러시아, 동아시아 등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경제권은 유럽연합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비해 월등히 큰 시장이다. SRX에 의해 한국이 유라시아 국가들과 직접 연결되고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와 몽골 등이 해양으로 나가는 항구 역할을 할 수 있으니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그에 따라 부산항은 세계적인 허브항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부존자원이 많고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협력 및 진출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 밖에 러시아의 연해주 개발에 참여할 수 있고, 가스관 등 국제에너지네트워크 건설에도 협력할 수 있다.
SRX 기대효과로 중요한 건 남북한과 동북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지역이 안정되려면 북한 개방과 남북경협이 우선돼야 한다. SRX의 북한통과 보장을 위해 중국·러시아 등 다자간 또는 남북한이 협력한다면 한반도가 안정되고 동북아 국가 간 갈등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안정으로 남북교류가 확대되면 ‘신(新)내수시장’ 창출도 기대할 수 있다.
SRX는 미래 국가발전을 위한 비전이다. 이제 그 비전을 실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SRX 추진을 위한 전담기획단 조직, SRX철도망계획 수립과 예산 확보, 로드맵 작성, 북한철도 조사 그리고 낙후된 북한철도 현대화 방안 수립 등이 필요하다. 관련 국가와의 협력도 필요한데, 한·중 및 한·러 철도협력회의를 개최하고 유라시아철도협력기구(OSJD) 가입을 추진해야 한다. 필수적인 과제는 북한 리스크 해소다. 북한지역 통과의 불안정을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다자간 협력이 필요하고, SRX 남북한협의체를 운영하는 것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기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