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부활의 증인: C자매 이야기(2)
입력 2014-03-18 02:38
1, 2차 항암치료를 받을 때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가슴은 오그라들었고, 부은 얼굴은 잿빛이 되어갔다. 거울을 보니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한번도 찾지 않은 하나님께 절규했다. “당신이 계시다면 나 좀 지금 데려가주세요.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이긴 싫다고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 C자매는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을 떠올렸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것이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그래요. 하나님 제가 주님의 것인 것 맞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것’이기에 암에 걸리게 하셨다는 깨달음이 왔다. 암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잠시 멈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나님이 계신지 돌아볼 생각을 했던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성경을 보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죽는 것은 자는 것이었고 죽음 이후를 위해 이미 예비 된 처소가 있었다.
항상 정답을 찾았는데 정작, 이미 손에 정답을 쥐고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다시 사신 그분을 만났을 때에 자신의 삶에서 비극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분은 부활하셨다. 하나님은 신이시다. 다시 사는 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 ‘인생의 주인이 나’라고 고집하는 것이야말로 죄라는 자각이 왔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C자매는 죽음을 생각했다. 관점은 이미 바뀌었다. 회개 이후 C자매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말기암에 걸린 자신이 할 일은 말이 아니라 죽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죽음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었다. 병중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간증을 했다. “제가 혹시 죽더라도 주님께서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실 터이니 결코 슬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모두 지금처럼 기쁘게 앞만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은 이후에 최종 결과가 나왔다. 암덩어리가 없어졌다. “기적입니다. 축하합니다”란 의사의 말에 C자매는 환호하지 않았다. 대신 죽음을 준비했던 자신에게 시간을 더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즉각적으로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활을 증거하도록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이라는 자각만이 가득 찼다.
C자매의 삶은 달라졌다. 사람을 만날 때 그들의 조건이 아니라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이며, 온갖 의무조항으로 가득 찬 일상에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직 그녀는 가슴 복원 수술을 하지 않았다. 한쪽 가슴엔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C자매는 부활의 주님을 생각한다. 그 ‘스카’(Scar·흉터)는 예수님 영접했음을 알려주는 스티그마(Stigma·흔적)였다. 인생의 ‘스카’는 부활의 주님으로 인해 ‘스타’(Star·별)가 되었다.
요즘 C자매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예수는 나의 주!”를 세 번 외친다. 하루 종일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고 있다.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었다.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