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와 쪽방촌·막노동 전전하다 ‘노숙인 봉사’ 목사 권유로 자활

입력 2014-03-16 18:08 수정 2014-03-17 02:18

노숙인창작음악제 참가 정유철씨 스토리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노숙인창작음악제. 자활 노숙인 정유철(45)씨는 이날 창작뮤지컬과 합창 무대에 섰다. 공연 5시간 전 공연장에 도착한 정씨는 시종일관 진지하게 리허설에 임했다. 그는 “노래만 하는 합창보다 대사와 연기까지 해야 하는 뮤지컬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뮤지컬 무대에 오른 정씨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미세하게 틀린 음정과 어눌한 발음,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손짓이었지만 독백으로 읊조린 대사에는 진심이 녹아 있었다.


“밑바닥 생활을 하며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과 가족 때문에 죽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희망의 동아줄을 알게 됐죠. 지금은 비록 힘없고 얇은 동아줄이지만, 더 열심히 노력해 튼튼하고 굵은 동아줄로 바꾸고 싶어요.” 그의 진솔한 ‘고백’에 좌석을 메운 300여명의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로 격려했다.

8년 전까지 정씨는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는 기술자였다. 내성적인 성격의 정씨는 임금 체불에 일을 그만뒀고, 실업 상태는 부모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집을 나왔고 쪽방촌과 건설현장을 전전하다 노숙생활도 했다.

자활의 계기는 4년 전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작은 개척교회에 나가면서부터다. “다른 노숙인을 위해 봉사해보지 않겠느냐”는 목회자의 제안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정씨는 지금 노숙인자활센터 ‘다시 서기’를 통해 폐자전거를 수리·보수해 판매하며 자활 중이다. 이 일을 하면서 부모와의 관계도 회복됐다.

음악제 마지막 순서인 합창. 무대에 오른 합창단은 자활 노숙인과 일반 자원봉사자 등 50여명으로 구성됐다. 하얀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이들 가운데 누가 노숙인이고, 자원봉사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맨 앞줄 정씨의 얼굴에는 긴장감 대신 미소가 가득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정씨는 기자에게 “예전에는 내가 꼭 찌그러진 공처럼 느껴졌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공기가 들어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한 번 더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홈리스대책위가 주최한 이날 음악제의 주제는 ‘거리의 아빠들, 희망을 노래하다’였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