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수면시간과 삶
입력 2014-03-15 02:31
인간은 잠을 자지 않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기네스북에 의하면 1964년 랜디 가드너라는 17세 미국 고교생이 세운 264시간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랜디는 기록에 도전하는 동안 정신분열증, 편집증, 환각, 피해망상 증세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잠이 부족할 경우 집중력이 저하돼 일의 능률이 떨어질 뿐 아니라 면역력이 약해져 각종 질환에 걸리기 쉽다. 또 수면이 부족하면 야식을 많이 먹게 돼 비만으로 이어지며, 뇌의 노화가 앞당겨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수면 부족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점이다. 1950년대 미국 암협회는 10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운동, 영양, 수면, 흡연 등 여러 요인에 대해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사망률과 가장 관계가 깊은 요인이 수면으로 밝혀졌다. 즉, 너무 적게 자거나 많이 잘 경우 정상적인 수면을 취하는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높게 나타난 것. 여기서 정상적인 수면시간은 하루 8시간 정도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장수하는 이유가 수면을 잘 취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과학자도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의 브곤차스 박사는 똑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여성은 하룻밤에 70분, 남성은 40분 정도 숙면을 취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여성들이 밤에 우는 아기로부터 방해받는 것을 대처하기 위해 수면 습관을 발전시킨 결과이며, 이 덕분에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 적게 자고도 머리 회전이 잘 되고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 이 같은 실험이 진행된 적이 있다. 수면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하나 바꾼 돌연변이 초파리를 탄생시킨 결과 30% 적게 자고도 생체반응과 활동 속도에 있어 정상 초파리들과 똑같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그 초파리들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수명이 30% 단축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고교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27분이다. 청소년들의 경우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력이 저하돼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외국 연구에서는 하루에 5시간 이하 취침하는 청소년의 경우 8시간 정도 자는 청소년에 비해 자살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48% 더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공교롭게 우리나라 고교생의 평균 수면시간과 함께 발표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고생 중 36.9%가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응답했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