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난만 해서는 한·일 관계 정상화 이룰 수 없다
입력 2014-03-14 01:51
유연한 전략으로 당국회담 격 점차 높여야
한국과 일본 두 나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양국 정상회담 협의차 12일 우리나라를 찾은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과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의 만남은 성과 없이 끝났다. 서로에 대한 비난 수위만 높인 채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파였다.
게다가 13일엔 CNN 방송이 박근혜 대통령 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 지난 1월 13일 청와대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번에 뒤늦게 방영된 영상에서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를 비난했다.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를 거론하며 두 나라의 공동 번영과 이익을 위해 나아가는데 큰 장애가 된다고 규정했다.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유엔 인권회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박 대통령과 윤 장관의 충정을 십분 이해하지만 한·일 관계가 서로 비난의 목소리만 높여서는 결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데 이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상대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은 감정만 상하게 해 불필요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두 나라 국정 최고책임자의 강경 입장으로 한일의원연맹 등 양국 민관단체의 교류 대부분이 중단된 것이 단적인 예다. 최근에는 일본 지상파에서조차 한류 방송을 중단한다고 하니 이러다가 단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윤 장관이 유엔에서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한 다음날에도 한·일 양측의 외교부 과장급 간부와 민간인들이 비공개로 만나 충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날 윤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은 일본 측이 강한 톤으로 항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책은 한·일 양측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 비로소 마련될 수 있다. 논의를 중시하지 않고 국제사회 호소를 앞세우면 실익은 없으면서 공연히 일본의 반발만 살 수 있다.
외교사의 고전적 이론가인 루이스 리처드슨의 ‘상호군비경쟁가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즉 적대적이지 않은 국가 상호간 국민소득 증가분 이상의 군비를 투입해 무기도입 경쟁을 하다 보면 결국 분쟁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한·일 관계가 이와 유사하다. 서로의 입장이 확고하게 정해져 있는 사안을 놓고 최고위 정책결정권자들이 감정의 날만 세운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한 것 아니겠는가.
일본 지식인 사회에도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 미래를 위해 두 나라가 공존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다. 아베의 우경화 정책을 공개 비난하며 평화헌법을 수호하자는 시민단체도 한둘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지일파가 적지 않으며 양국은 안보나 경제 등 협력해야 할 부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동북아 패권을 거머쥐려는 중국의 굴기 전략 앞에서 두 나라는 협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좀 더 냉정한 자세로 당국 간 대화의 격을 높여가면서 구원(舊怨)을 풀 해법을 찾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