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차관, 아베 도발 후 처음 마주했는데… ‘빈손’으로 온 日 원론적 입장만 교환

입력 2014-03-13 02:31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최악의 경색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외교차관이 12일 서울에서 회동했다. 양측은 상견례 차원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3시간 동안 양국 현안에 대한 협의를 가졌으나 서로의 기본 입장만 교환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처음 열린 양국 고위급 외교 채널에서도 뚜렷한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은 이날 방한한 사이키 아키타카(齋木昭隆)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양국 관계 개선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조 차관은 한·일 관계 회복의 선결 조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서 우리 국민이 이해할 수준의 조치를 일본이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한·일 관계가 발전하려면 역사 수정주의적 언행을 자제하고 미결 과거사 현안에 성의 있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사이키 차관은 한·일 양국이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선 “아베 내각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한다는 것은 여러 차례 분명히 얘기했다”는 취지의 원론적 입장만 밝히는 데 그쳤다. 이번 회동은 일본 측이 먼저 요청했던 만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새로운 제안 여부가 주목을 받았으나 구체적인 제안 등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회동 분위기에 대해 “양국 관계에 대한 각자 입장을 교환하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특히 이번 협의에서도 한·일 정상회담 조기 개최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 차관은 회동 전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성과 있는 회담이 돼야 한다고 우리 대통령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그런 믿음이 설 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키 차관은 이달 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며 당황스럽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차관과 사이키 차관의 회동은 당초 예정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3시30분에 시작해 3시간 동안 이어졌다. 사이키 차관은 당초 조 차관과 만찬을 함께한 뒤 13일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국내 사정’을 이유로 회담 전 우리 측에 양해를 구한 뒤 곧바로 귀국길에 올랐다.

한편 미국을 방문 중인 최윤희 합참의장은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옆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참배한 뒤 “북한 위협에 맞서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이 필요하다”며 “한·일 관계 등 앞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봐가며 발전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 한·일 간 군사 협력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의 기본 방침 하에 안보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