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원격의료서비스 서두르지 말자

입력 2014-03-13 01:36


원격의료 허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상정이 보류됐다. 정부는 11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원격의료서비스 도입에 관한 의료법 일부 개정 법률안(원격의료법안)을 확정하려던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집단휴진을 강행한 의사단체의 눈치를 살핀 결과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병원급 의료기관 전공의들의 참여가 생각보다 높아 정부도 당장 원격의료법안을 국무회의에 올리기엔 부담이 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도대체 원격의료서비스가 무엇이기에 이 난리일까. 의사들의 집단휴진은 2000년 2월 의약분업 분쟁 이후 14년 만이다. 당시 수많은 환자들의 불편을 지켜본 국민은 지금 불안에 떨고 있다. 원격의료서비스란 한마디로 의사가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상으로 환자의 질병을 관리하고 진단하며 처방 등을 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환자 입장에서 볼 때 이 서비스는 그리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사정상 대면진료가 어려울 때 집에서 편하게 인터넷을 통해 의사와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원격의료서비스를 재택진료를 기반으로 하는 미래의학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부작용과 후유증이다. 의사단체는 당장 원격의료서비스가 실시되면 환자의 상태를 똑바로 살피기 힘들어 의료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일부 대형 상급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돼 동네병원은 결국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의료정보 해킹 우려다. “이번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KT 임직원 모두 고객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란 제목으로 KT가 엊그제 신문과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한 사과문이다.

KB국민카드, 롯데카드, NH농협카드 등 신용카드 3사가 보유하고 있던 고객의 주민등록번호,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모두 털려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진 지 두 달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보안 시스템과 무책임한 고객정보관리가 빚은 참사였다. 만약 원격의료서비스 네트워크에 해커가 무단 침투해 내 진료 정보를 빼돌려 돈벌이 수단으로 제3자에게 넘긴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원격의료서비스 제도를 도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의료 이용 시 국민과 환자에게 최대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울러 의료서비스산업까지 선진화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안전장치부터 충분히 마련하고, 시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서두르다 항생제 남용 문제는 해결도 못한 채 되레 국민의 불편과 부담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의약분업제도와 같이 뜻밖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오늘날 동네병원이 어려운 이유는 왜곡된 의료전달체계 때문이다. 원격의료서비스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환자들이 모두 대형병원만 찾는 마당에 원격의료서비스 실시는 장차 동네병원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의사단체와 충분히 시간을 갖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의사단체도 원격의료서비스의 필요성을 완전 부정하는 것은 아닌 줄 안다. 오랜 시간 동안 대면진료로 고정돼 있던 의료서비스의 근간을 바꾸는 시도이기 때문에 논란이 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된다’ ‘안 된다’ 시비는 일단 미루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혜를 더 모을 필요가 있다. ‘선 보완 후 시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있다. 다소 방해가 되는 일이 있더라도 꼭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은 요즘 원격의료서비스 실시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정부와 의사단체에 모두 해당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