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망가지며 빛났다… ‘전지현 신드롬’ 정상에 오른 비결은
입력 2014-03-06 02:32
지난주 막을 내린 SBS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 인기 요인을 꼽아보자. 일단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로맨틱 멜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2012),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등으로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배우 김수현이 나온다. 표절 논란을 뚫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잘 버무린 스타작가 박지은씨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부르기만 하면 각종 차트를 석권하는 가수 성시경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너의 모든 순간’도 탑재됐다. 그런데 만약 천송이 역을 다른 여배우가 맡았다면, 전지현(33)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신드롬이 가능했을까.
◇CF 스타 꼬리표로 짧았던 전성기=1997년 하이틴 잡지 ‘에꼴’의 표지모델로 얼굴을 알린 전지현은 이듬해 SBS ‘내 마음을 뺏어봐’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오종록 PD는 그녀의 끼와 가능성을 주목해 99년 SBS ‘해피투게더’에 연속 캐스팅했다. 이병헌 송승헌 김하늘 등 화려한 출연진 속에 전지현은 주목받는 신인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스타성은 드라마가 아니라 광고로 터졌다. 같은 해 삼성 프린터 CF 속 뇌쇄적인 테크노댄스 한 방으로 남성들을 사로잡았다.
치솟는 스타성을 충무로가 가만둘 리 없었다. 전지현도 CF 모델보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화이트 발렌타인’(1999) ‘시월애’(2000)에 잇따라 출연했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이미지 변신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신인 여배우의 패기 넘치는 각오는 수포로 돌아갔다. 대중은 광고처럼 통통 튀면서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전지현을 원했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는 딱 맞는 옷이었다. PC통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어려운 대사도, 내면 연기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자유롭게 뛰어노는 여대생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뭇 남성들은 전지현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줬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엽기적인 그녀’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4인용 식탁’(2003) ‘데이지’(2006) 등 출연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번번이 실패했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블러드’(2009)는 아시아 시장도 뚫지 못했다. 연기력 논란이라는 꼬리표는 ‘CF 스타’ ‘신비주의’라는 비아냥으로 이어졌다. 데뷔 시절부터 몸담았던 소속사 대표와의 스캔들, 도청 사건 등은 안 그래도 흥행 실패로 주눅 든 전지현을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영화·드라마 동시 흥행으로 제2의 전성기=기회는 영화 ‘도둑들’(2012)로 찾아왔다. 줄타기 전문으로 시종일관 발칙한 언행과 농염한 몸짓을 선보인 전지현은 영화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1000만 관객 돌파로 흥행 부도수표라는 오명도 벗었다. 지난해 ‘베를린’에서도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단독 주연을 고집하지 않았고 공백기 동안 연기 호흡을 가다듬은 것이 주효했다.
스크린 연속 흥행으로 인한 자신감은 14년 만의 드라마 복귀로 이어졌다. ‘별그대’ 천송이 역할을 맡은 전지현은 천방지축 톱스타로 쉴 새 없이 망가졌다. 이 모습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연스러웠다. 최고 시청률은 28%(닐슨 코리아 기준)까지 치솟았고 옷과 화장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눈 오는 날에는 치킨에 맥주”라는 대사 한마디로 중국에서 치킨 열풍까지 불러일으켰다. ‘전지현 신드롬’의 직간접적인 경제 효과가 3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결혼은 여배우의 무덤’이라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지현은 2012년 4월 결혼 이후 오히려 영화와 드라마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활동 공백기에 결혼한 것이 오히려 도움을 준 것 같다. 스타성을 살려 캐릭터 구축만 잘 한다면 얼마든지 롱런할 수 있다. 오히려 안정된 연기를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별그대’를 연출한 장태유 PD는 “전지현이 없었다면 ‘별그대’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며 “천송이라는 캐릭터를 전지현만큼 잘 해낼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극찬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애초 워낙 스타성이 높았던 배우인데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품을 만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