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창끝부대를 강화하라
입력 2014-03-06 01:33
미래전쟁에 대한 책 ‘진화하는 전쟁’에서 눈에 띄는 대목을 읽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 특수전 대원들을 위한 ‘보호 전투복’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2002년 탈레반과의 전쟁을 수행하던 한 대원이 미 매사추세츠 나틱에 있는 육군병사시스템센터 특수작전 프로젝트팀에 편지를 보냈다. “너무 춥다.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장비를 보급해 달라.” 아프가니스탄의 겨울은 혹독하다. 산악이 많아 지역에 따라 온도차도 상당히 크다.
1년 뒤 특수부대원들에게 임무에 따라 여러 겹으로 입을 수 있는 15벌로 된 7단계 보호 전투복이 지급됐다. 1단계는 라운드티와 반바지로 비단처럼 가볍고 수분을 신속하게 건조시킨다. 2단계는 바지 솔기를 관절처럼 연결해 무릎 찰과상을 최소화한 바지와 긴소매 셔츠다. 3단계 중간층 재킷에는 무거운 장비를 어깨에 멜 때 찰과상을 줄이도록 패딩을 덧붙였다. 4단계는 부드러운 바람막이 셔츠, 5단계는 신축성과 방풍·통기성이 높은 재킷과 바지, 6단계는 가볍고 코팅이 된 딱딱한 재킷과 바지, 7단계는 극도의 추위에 대비한 재킷과 조끼, 바지로 구성됐다.
1년 만에 이 같은 전투복을 만드는 것이 미국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당시 기존 방한복을 대체하려면 상업용 제품을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개발 책임자는 시중에 판매되는 것보다 더 좋은 옷을 보급하고 싶었다. 개발팀은 등산가들, 아웃도어 의류회사들과 의논하고 특수부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었다. 추운 날씨에 방아쇠를 당기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손가락 보온기’라는 기발한 제품도 만들었다.
전 세계에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은 무인정찰기, 최첨단 전투기, 토마호크 미사일처럼 정밀하고 가공할 만한 타격력을 지닌 첨단 무기체계 못지않게 실제 전투를 수행하는 병사들이 온전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래전사’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스마트 방탄헬멧에서 첨단 개인화기, 부착식 인공근육까지 갖춰 병사 개개인이 최대한의 전투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미래전사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병사현대화계획’에는 11개국 69개 업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미래전은 정보위성 등 감시정찰체계와 전투기, 미사일 등 타격 수단이 하나의 정보통신망으로 연결돼 실시간 전투 정보가 교환되면서 작전이 시행되는 디지털 전쟁이다. 전투의 주체인 말단 부대 지휘관이나 병사들도 이런 디지털 환경에 맞는 조건을 갖춰야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들 국가가 미래전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다.
반면 우리나라 병사들, 특히 대대 단위 이하 ‘창끝부대’ 현황은 ‘미래전사’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창끝부대’란 적의 국지도발이나 전쟁발발 시 전투에 투입되는 최전방 부대들이다. 산악이 많은 지형을 고려하면 산 너머 적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필수적이지만 창끝부대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쌍안경만으로는 원거리나 고지 뒷면의 핵심 표적을 살펴보기 어렵다. 야간에는 깜깜이 상태가 된다. 아직도 P-999k 무전기로 현황보고와 지시가 이뤄지는 곳도 적지 않다. 일부 첨단 화기가 지급되는 곳도 있지만 57㎜ 무반동총, 81㎜ 박격포 등 주력 화기는 사거리와 정확도, 파괴력이 낮다. 이동용 차량도 갖추지 못해 대부분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형편이다. 적과 싸우기도 전에 피로가 가중돼 지치기 십상이다.
창끝부대는 이름에 걸맞은 날카로운 전투력을 갖춰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방부는 천안함 폭침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창끝부대의 전투력 강화를 강조해 왔다. 하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F-35, 이지스함 같은 첨단 무기체계 구축도 중요한 일이지만 창끝부대의 전투력 확충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