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섭의 시시콜콜 여행 뒷談] 고로쇠의 눈물

입력 2014-03-06 01:33


지난달 말 백운산 고로쇠나무 수액을 취재하기 위해 광양으로 가던 중 시의 담당공무원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침 뉴스에 가짜 광양 백운산 고로쇠나무 수액을 팔던 일당이 순천에서 붙잡혔다는 보도가 나와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광양산 수액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취재를 강행하겠느냐고 묻더군요.

차를 세우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광양 쪽으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가짜를 팔다 붙잡힌 일당이 수액을 생산하는 농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수액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가는 농민들이야말로 진짜 피해자입니다. 애꿎게 한철 장사를 망치게 된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예상대로 고로쇠나무 수액 산지인 백운산 동곡계곡은 관광객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수액 물통을 지게에 지고 산을 내려오던 동동마을 정영오씨(74)는 “작목반에서 채취한 진짜 수액은 광양시가 제작한 ‘절취방지 플라스틱 마개’로 밀봉된 물통에 들어있다”며 진짜와 가짜 구별법을 신문에 크게 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전국 곳곳에서 수액이 생산되는 데 굳이 찜찜하게 광양에서 생산된 수액을 마실 이유가 있냐고.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한국산을 카피한 가짜 스마트폰이 중국에서 유통된다고 해서 한국에서 생산된 스마트폰도 가짜냐구요.

광양을 비롯해 이웃도시인 여수, 순천의 농어민은 지금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광양은 가짜 수액 사건으로 농민들이 유탄을 맞았고, 여수는 공단 기름유출사고로 멀리 떨어진 청정해역의 수산물까지 외면당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순천은 조류 인플루엔자(AI)로 순천만생태습지가 몇 달째 폐쇄되면서 주변의 음식점과 숙박업소는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몇 년 전 강원도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마침 여름 휴가철을 맞은 관광객들은 홍수 피해 복구로 여념이 없는 강원도로 놀러 가기를 주저했습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뚝 끊기자 피해복구 현장과 떨어진 관광지 주민들이 생계에 타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강원도가 내건 슬로건이 ‘물난리 난 강원도로 눈치 보지 말고 휴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고통 받는 농어민을 돕는 차원에서 이번 주말 봄꽃이 피기 시작한 광양, 여수, 순천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요?

박강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