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8) 한국YMCA 사회체육 활동
입력 2014-02-27 02:33
한국 스포츠 선구자에서 평화의 사도로
오는 8월에도 동티모르 딜리에서는 한국과 일본,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축구 대회가 열린다.
동과 서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던 동티모르 청소년들이 축구공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건 2006년부터 시작된 동티모르YMCA 축구교실 덕분이다.
한국YMCA(한국Y) 및 일본Y는 2012년부터 체육 지도자들과 회원들을 동티모르 현지에 파견해 축구교실을 열고 있다. 한국의 여수Y와 여수 와이즈맨(Y’s Men)은 축구공과 운동화, 유니폼 등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축구로 만들어가는 평화의 현장은 100여년 전 체육을 통해 식민지 청년들의 꿈과 정신을 일깨웠던 한국Y의 활동상을 떠올리게 만든다.
“장사 100명만 양성하면 나라에 대하여 걱정할 일이 없다.”
1906년 월남 이상재 선생이 YMCA 유도부 창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외쳤던 말은 체육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일꾼을 찾자는 호소였다. 1929년 한국Y가 최초로 개최한 전국유도대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덴마크식 농촌운동과 더불어 Y가 보급했던 덴마크의 유연체조는 Y체육활동의 취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유연체조의 특징은 특정 시설이 불필요하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덴마크 국민들이 독일 민족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 운동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되찾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전국에 보급했던 것이다.”(신흥우 당시 연합회 총무, 1931)
Y체육 활동은 일제치하의 농촌 오지까지 확산됐다. 이는 농민들의 참여 및 조직 활동을 돕기 위해서는 체육 프로그램을 농촌사업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Y의 지도방침 영향이 컸다.
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운동회를 주최한 단체도 Y다.
“조선 상공협회장을 비롯한 여러 거상들이 참가하여 운동회를 열었다. 무엇보다도 진고개의 일본 상권에 대항하여 민족 감정으로 하는 것인 만큼 각 상점이 철시를 하고 시가에서 가장 행렬을 하여 시위하였다.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을 택하여 장안을 한바탕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신흥우 당시 연합회 총무, 1925)
눈길을 끄는 건 Y가 운동회를 마친 뒤 만찬회를 열어 민중의 친교를 돈독히 하는 계기로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한국Y의 체육활동은 기독교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사중 목적사업의 4대 요소인 덕(spirit) 지(mind) 체(body) 친교(koinonia)가 그것이다. 육체와 지성과 정신은 그리스도의 지체이자 성전으로 전인격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 요소가 균형 있는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Y체육 활동은 식민지하 민중의 정신적 소생과 사회적 단결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민족독립운동을 위한 청년 지도자를 육성하고 당시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던 농민들을 조직하기 위한 사업이기도 하였다.
한국Y는 국내에 도입된 근대 스포츠의 선구자나 마찬가지다. 한국 최초로 야구(1905년), 농구(1907년), 스케이트(1908년), 배구(1916년)를 보급하는 등 국내에 소개된 상당수 외국 스포츠의 보급 주체는 바로 Y였다.
한국Y의 활발한 스포츠 보급 활동은 미국 뉴저지주 캄덴Y 회원들과 청소년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그들의 십시일반 기부로 한국Y는 1917년 벽돌로 지어진 한국 최초의 3층짜리 실내체육관을 건립하게 된다. Y의 체육활동은 Y소년사업으로 출발한 보이스카우트(소년척후대·1922)와 대한체육회 전신인 조선체육회의 창설(1920년)로 이어졌다. 이는 한국Y가 한국체육 발전과 스포츠 진흥의 본산이자 민간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역사의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치하 Y체육 활동은 더 활발했다. 서울, 광주, 대구 등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광주Y는 1930년 큰 창고를 구입해 체육실로 개조했다. 1939년까지 유도, 권투, 기계체조 등 각종 경기와 체육교육, 행사를 치렀다. 한국Y의 농촌운동과 더불어 체육활동이 확산되자 일제는 1938년 한국Y를 일본Y에 강제로 예속시키고, 가장 먼저 농촌사업과 학생 청년회 운동을 탄압했다. 이어 최후의 보루였던 체육 프로그램마저 금지시켰다.
하지만 Y체육 활동과 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역Y에서는 1976년부터 30여개의 ‘아기스포츠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레크리에이션 강좌는 전통적인 Y사업으로 자리매김했고, 20여개 지역Y가 참여하는 ‘한국Y소년소녀축구단 전국대회’ ‘청소년 길거리 농구대회’를 비롯해 캠프, 수영 등 다양한 Y의 체육 사업들이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Y체육 프로그램은 순위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9년부터 Y가 개최하는 스포츠 대회에서는 ‘평화상’을 시상하고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참가자 모두가 우승자이고 동반자라는 취지에서다.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와 1등 이외에는 패자로 인식되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함께하는 즐거움’ ‘모두가 승자’라는 협동·상생·평화의 문화를 한국Y가 만들어가고 있다.
이주봉 프로그램국 국장 <한국YMCA전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