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⑧ 안은정 대학로서울안과 원장
입력 2014-02-27 01:40
수술 전 항상 기도… “환자 한 명 한 명에 주께 하듯 합니다”
'God Loves You(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병원 이름 위에 새겨진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잔잔한 가스펠송이 흘러나오는 환자 대기실을 지나 진료실에 들어섰다. 이곳에 온 환자라면 벽면의 네모난 액자 속 문구를 모른 척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병원을 찾는 비기독교인들은 자칫 불편할 수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대학로서울안과 안은정(46·서울 사랑의교회) 원장은 타협하지 않았다. 확고한 신앙관에 바탕을 둔 경영 원칙 때문이다.
“저, 기도부터 하고 시작할까요?”
지난 25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병원 진료실에서 진행된 안 원장 인터뷰는 기도로 시작됐다. 기도를 마친 뒤 물었다. 이렇게 기독교인임을 드러내놓고 진료하는 게 득보다 실이 많은 건 아닌지.
“오히려 저를 붙잡아주는 든든한 지지대가 됩니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은 거의 모두 제가 크리스천임을 알고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줍니다.” 안 원장의 시술 건수는 지금까지 1만 안(眼)이 훌쩍 넘는다. 최근 5년간 이곳에서 레이저 시력교정 수술을 받은 환자들 중 정상시력 범위(1.2∼0.8)를 유지하는 경우가 96.9%에 달한다. 그 통계 그래프가 환자 대기실 벽에 걸려 있었다.
안 원장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 환자 앞에서도 소리 내어 기도를 한다고 했다.
“먼저 환자 분께 양해를 구해요. ‘저는 수술 전에 기도를 하는데, 해도 될까요’라고요. 지금까지 기도를 거절한 분은 딱 2명뿐이었어요.” 종교의 유무, 크리스천 여부를 떠나 환자를 향한 담당 의사의 진심이 통한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안 원장은 의대를 졸업한 뒤 병원 봉직의(병원 소속 의사)를 거쳐 2000년 시력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지금의 안과를 개원했다. 기독교적 색채 때문에 초기에는 고전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나는 크리스천이오’라고 드러내놓고 일할 수 있는 건 ‘새벽기도’와 ‘코칭’ 덕분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삶의 모든 경영이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거든요.”
30대 중반에 개원한 안 원장은 나름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라식·라섹 수술 붐이 일면서 안과전문의들의 병원 개업이 성행하던 때였다. “돈을 많이 벌면 번 만큼 행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 반대였어요. 몸은 몸대로 지쳐가고 영적으로는 공허함이 밀려오더군요.”
마흔이 될 무렵, ‘이 상태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결론 내린 그는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피곤해서 평생 할 수 없는 일 중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았던 그였다. “‘마지막 때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마25장)’는 제목의 설교를 들을 때였어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열 처녀 비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달란트(재능) 비유, 이웃 사랑 실천을 강조하는 양과 염소의 비유가 마음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당시 안 원장은 모태신앙인으로 나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어왔다. 하지만 새벽기도를 통해 깨달은 건 “어정쩡하게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씀에 근거한 행함이 있는 믿음 생활을 실제로 이어가는 게 중요했어요. ‘나, 예수 믿습니다’라는 말만으로는 이 세상은 물론 주님 앞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이후 그는 병원홍보 광고를 일체 중단했다.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 감소를 각오해야 했다. 수술의 질적 제고를 위해 하루 수술 횟수를 제한했고, 완벽할 정도의 ‘성실 납세’를 실천했다. 병원의 모든 경영을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결단에 따른 실천이었다.
그즈음 접하게 된 ‘코칭’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을 일깨우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안 원장은 교회 여름 수련회에 갔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슈바이처 전기에 감동받아 의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그의 바람은 줄곧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빨리 여기(병원)를 정리하고 해외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을까’였어요.” 별다른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던 중 코칭 전문가인 서우경(서우경코칭연구소) 교수를 만나면서부터 그는 소명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
“믿음의 열정만으로 아프리카에 가는 게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보다는 오늘 이곳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최상의 진료로 치료해주고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 즉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이루는 일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안 원장은 자신의 달란트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인턴 수련을 마치고 전공 분야를 택할 때 기피 1순위로 안과를 꼽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섬세하고 순발력이 필요한 안과 영역이 다른 분야보다 제 적성에 맞더라고요. 또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신 사역 중에서 눈 먼 사람들을 고치신 사역이 많잖아요. 저로서는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안 원장은 올 초 대한기독안과의사회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비전을 품기 시작했다.
“통일이 되고 나서 북한 지역에 안과선교병원을 세우는 일이에요. 기독안과 의사들과 함께 육의 눈뿐만 아니라 영의 눈도 함께 고쳐주는, ‘빛’과 ‘복음’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안은정 원장
△1968년생 △가톨릭대 의과대학 졸업 △서울 압구정동 윤호병원 안과 과장, 평촌 성모안과 원장, 대한안과의사회 기획이사 역임 △한국백내장굴절수술학회 회원 △서우경코칭연구소 부소장 △대한기독안과의사회 회장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