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정보유출 대형사고 연달아… 한국은 금융 후진국”

입력 2014-02-26 02:00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냐는 비웃음도 산다. 하지만 이래야 바위를 더럽힐 수라도 있지 않겠나.”

2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 앞, ‘저축은행 사태’ 3년을 맞아 열린 금융당국 규탄 집회에 참석한 피해자는 40여명에 머물렀다. “무능한 금융당국은 해체하고, 부패한 금융관료들을 처벌하라….” 피해자들에게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외치는 구호 역시 3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날 부산에서 상경한 김옥주(52·여) 전국저축은행비상대책위원장은 “피해자 다수가 노인이라서 갈수록 집회 규모가 줄어든다. 생업 때문에 동참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2011년 2월 부산저축은행 계열의 영업정지 사태는 김 위원장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거리에서 시간을 보낸 3년 사이 김 위원장에게는 허리디스크와 눈병, 고혈압이 찾아왔다. 그는 한때 도청 공포에도 시달렸다. 김 위원장은 “예고 없이 어딜 가더라도 경찰 정보관이 따라붙고, 전화가 이유 없이 끊기는 일이 반복됐다”며 “분명히 사찰을 받았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툭하면 구치소에 다녀오는 엄마 때문에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딸의 마음에 병이 들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불법 점거 농성과 미신고 집회를 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지난달 15일부터 부산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키코피해기업공동대책위, 동양사태피해자대책협의회,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에게서 뇌물을 받은 모피아와 정치인들은 잇따라 면죄부를 받고, 금융 피해자만 두 번 죽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피해자들은 “저축은행 사태 3년이 지난 현재도 제대로 된 피해배상이 없다”며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를 촉구했다. “동양 사태,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계속되는 대한민국은 금융 후진국”이라는 새된 소리도 나왔다. 이들이 원하는 보상은 여전히 요원하다. 저축은행 파산 절차는 8∼9년에 달하고, 그나마 많은 은행은 파산배당률이 한 자릿수에 그친다. 민주당 정호준 의원실에 따르면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26곳의 투자자들은 최대 90%가 넘는 손실을 볼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저축은행 매각을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라”고도 주장했다. 부실 저축은행의 주인들이 쫓겨난 자리에는 대부업체들이 들어오고 있다. 예보는 최근 가교저축은행 우선협상대상자로 ‘러시앤캐시’의 에이앤피파이낸셜, ‘웰컴론’의 웰컴크레디라인대부를 선정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저축은행을 대부업체에 넘겨 자금조달 창구로 만드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크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