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하산 인사 안 한다더니 국민 우롱하나

입력 2014-02-24 01:41

국민을 우롱해도 유분수다. 공공기관에 5년 이상 관련 업무 경력이 없는 기관장이나 감사를 선임하지 않겠다고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게 엊그제다. 공기업 개혁을 하겠다면서 정작 방만 경영의 주된 원인인 낙하산 인사 근절 대책이 빠진데 대한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가 마지못해 내놓은 대책이다. 이마저 낙하산 다 내려보내놓고 내놓은 뒷북 대책이다. 그러더니 보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친박계 인사들을 공공기관장과 감사에 또 집중 투하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여성본부장을 맡았던 홍표근씨가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에 임명돼 24일 취임식을 갖는다.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소통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강요식씨는 한국동서발전 상임감사위원에 임명됐다. 기획재정부가 낙하산 인사 근절 대책을 발표한 날에는 친박계 인사인 이상권 전 새누리당 의원이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내정됐다.

감사는 기관의 방만 경영과 비리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자리다. 업무와 무관한 정치권 인사들이 회계장부나 제대로 들여다보고 감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250%에 달하고 2012년 공공기관 평가에서 최하인 E등급을 받았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강도 높은 개혁을 해도 부족할 판인데 낙하산을 내려보내서 뭘 하겠다는 심산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공공기관이 대선 공신들의 논공행상 자리가 돼선 안 된다고 누차 지적했다. 공공기관들이 5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도 자녀 학자금에 가족 틀니와 임플란트 비용까지 대주며 방만 경영을 해온 것은 낙하산 기관장과 노조가 야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외한인 낙하산 기관장이나 임원은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노조 요구를 그대로 수용했고, 노조는 핫바지 기관장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언제까지 악습을 되풀이할 셈인가.

공기업 개혁은 낙하산 인사를 솎아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11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이후 김학송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성회 전 의원이 각각 한국도로공사 사장과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에 임명된 것을 비롯해 최근까지 30여명에 가까운 기관장, 감사, 사외이사들이 공공기관을 접수했다. 이들을 그냥 놔두고는 공기업 개혁은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낙하산 인사 관행을 끊지 못하겠다면 현 부총리는 식언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도리다. 대선 공신들 챙겨 달라는 정치권 요구에 끌려다니면서 공공기관 부채만 더 늘어나게 할 부총리는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