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싸이·소녀시대·한류에 관한 유감

입력 2014-02-24 01:35


한국을 좀 안다는 외국인에게 으레 듣는 말이 ‘강남 스타일’과 ‘싸이’라는 단어다. 좀 더 한국을 연구한 이들은 한류(韓流)라는 말도 한다. 젊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걸그룹 ‘소녀시대’를 언급하기도 한다.

수 년 전부터 한류가 어느새 우리 문화계의 ‘메인 커런트(main current·주류)’가 돼 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면서 싸이를 대동했다. 싸이는 외국 정상들과 유수 기업인들 사이에서 특유의 말춤 시늉을 하며 흥겨움을 자아냈다. 박 대통령은 한·스위스 정상회담 자리에서 강남 스타일을 한국식 창조경제의 한 사례라고 소개했고, 디디에 부르크할터 스위스 대통령은 “한국 하면 강남 스타일이 떠오른다”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석상에서도 무한하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한류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견해에 국내 주요 인사와 기업, 문화계 등을 가리지 않고 동의하는 모양새다. 한마디로 ‘한류=문화산업’이란 등식이 정답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그런 한류가 가끔씩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올랐고,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의 유튜브 조회 건수를 올렸다는 이유로 강남 스타일이 우리 문화의 대표주자가 돼버린 현실이 그렇다.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에 짙은 화장, ‘야한’ 허리춤을 추는 걸그룹들이 해외에 진출했다며 어깨에 힘을 주는 것도 그렇다.

소녀시대로 대변되는 걸그룹은 그들을 둘러싼 매니지먼트 회사의 피조물이다. 회사가 외모부터 목소리, 춤 실력까지 오디션을 해 멤버를 뽑고 집중 연습을 시켜 등장시킨다. 어떤 곡이 인기를 얻을지를 결정해 작곡가 작사가에게 노래를 ‘하청’한다. 그런 타이틀곡을 갖고 나온 걸그룹·보이밴드들이 인기몰이를 통해 돈을 벌면 그 돈은 매니지먼트 회사로 흘러들어간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엄청난 주가 상승을 기록하는 사회, 그게 한국이다. 그게 지금의 문화산업 현주소다.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라 ‘꼭두각시’에 불과한 현실. 표현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한류의 냉정한 현실이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서구인들에게 그저 말춤 한 번 출 수 있는 단편적 파티곡에 불과하다. 걸그룹은 소위 ‘트위너(tweener)’라고 하는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틴에이저의 문턱에 올라 있는 미숙한 10대 초반 청소년들에게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음악 스타일일 뿐이다. 그런 걸그룹이 우리나라에선 40·50대 아저씨 부대에게도 선풍을 일으킨다. 걸그룹을 보는 아저씨들의 시선? 그건 결코 건전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악을 통해 문화를 감상한다기보다는 예쁘고 섹시한 소녀들의 외모를 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문화비평 용어 중에 ‘키치(Kitsch)’란 말이 있다. 하찮은 예술품, 저급한 예술 감각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어찌 보면 한류란 이 단어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대량생산된 걸그룹들의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노래들이 그렇고, 그 노래를 감상하는 우리의 시선이 또한 그렇다. 문화는 한 시대를 표현하는 일체의 상상력이고 그 표현된 상상력에 대한 감탄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이 팔릴까’를 고민해야 할 미래생산가치도 아니다. 언제까지 한류를 경제 개념으로, 투자의 대상으로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진짜 한류가 그것밖에 없는 것인가.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