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아라] 독일·프랑스의 의료비 통제비법은

입력 2014-02-21 02:31


독일선 민폐 끼치는 나쁜 의사를 동료가 적발한다

건강한 사람이 매달 건강보험료를 내는 이유는 아플 때 도움 받기 위해서다. 의사들은 환자 치료하느라 쓴 비용 대부분을 환자 개인이 아니라 보험에서 보전 받는다. 건강보험의 작동원리다. 모두에게 행복한 제도인데 허점이 있다. 모아놓은 보험료는 주인 없는 ‘공돈’이어서 의사도, 환자도 병원 이용이 많을수록 이득이다. 자연스럽게 서비스량은 늘고 보험료는 올라간다. 밥값을 n분의 1로 부담할 때 파스타 대신 랍스터를 시키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전을 보태면 의료비 폭등을 위한 최악의 레시피가 탄생한다.

◇의사들의 욕심은 동료 의사들이 견제한다=이기적 개인, 고령화, 기술발전. 3대 악재에 시달리는 건 사회보장 선진국인 독일과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의료비 통제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 두 나라가 선택한 길은 달랐다. 독일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에게 전권을 쥐어줬다. 내부 감시의 길을 택한 것이다. 프랑스는 건강보험공단에 강력한 감시권을 부여했다.

지난해 12월 베를린에서 만난 연방 공보험계약의사협회(NASHIP) 롤란드 박사는 독일 방식을 “민폐 끼치는 나쁜 의사들을 동료 의사들이 적발하는 강력한 내부 검증 시스템”으로 설명했다.

독일에서는 의사협회와 공공의료보험조합들(단일 조합인 한국과 달리 독일은 여러 개 조합이 경쟁한다)이 전년 진료 실적을 기준으로 총액 계약을 맺는다. 지난해 100만원을 지급했으니 올해는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110만원을 주는 식이다. 의사협회는 이렇게 받아낸 110만원을 지역별로 회원 의사들에게 분배하는데 3개월 단위로 돈을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진료 실적에 따라 더하고 뺀다.

만약 의사 A씨가 가짜 환자와 과잉진료로 의사협회로부터 부당하게 추가 정산금을 받아내면 손해 보는 건 조합이 아니다. 이웃의 동료 의사 B씨다. ‘선수’ 사이에서 소문은 금방 돌고 평판이 나빠진 A씨는 협회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롤란드 박사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사기라면 돈을 토해내고 멤버십을 잃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의사 자격까지 박탈당하게 된다”며 “독일에서 의사가 사기를 칠 때 대상은 공보험조합이 아니라 동료 의사들이다. 상호 견제가 철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큰 병원들은 공보험조합들이 직접 감시한다. 병원이 ‘A환자 치료비용 00원’으로 조합에 청구하면 의심되는 것들을 추려 전문 심사기구 엠데카(MDK)에 의뢰한다. 이곳에서 특정 질병의 입원일수, 처방, 처치 등이 적절한지 따진다. 공공의료보험조합들 중 하나인 아오카(AOK) 동북부지사의 대외협력 담당자 잔더씨는 “부당청구 적발 비율은 전체 청구 건수의 8%쯤 된다”며 “대부분 기술적 실수지만 실수가 반복되면 조합과의 계약이 깨질 수 있으므로 병원들은 알아서 조심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보험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독일 전체의 부당청구액은 80억 유로(약 11조6000억원), 전체 보험재정의 4%쯤으로 추정된다. 신뢰사회로 자부하는 독일에서도 부당청구는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골칫거리인 셈이다. 연합회 슈테펜 바이스 정책담당관은 “의료기관의 부당청구를 형사상 사기로 취급하도록 의회에 강력하게 이슈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사원이 의료기관까지 뒤지는 프랑스=MDK에 전문심사를 위탁하는 독일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건강보험공단(CNAMTS)이 심사인력 4200여명을 직접 고용해 의료기관의 부당청구를 적발한다. 절반이 넘는 2500명은 의사·약사·치과의사 출신 전문가다. 이들에게는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 자료를 요청하거나 관련자를 인터뷰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부여돼 있다.

지난해 12월 파리 CNAMTS 사무실에서 만난 가브리엘 바크 국제협력관은 “한 사람에게 동일한 약을 20통 팔았다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300개의 의료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의료행위를 부풀려 청구하는 의사들이 주로 적발된다”며 “컴퓨터 프로그램에 몇 가지 유형을 넣은 뒤 데이터마이닝을 통해 걸러내고 의심스러운 것은 심사자들이 현장조사 등을 통해 부정행위를 찾아낸다”고 설명했다.

공단에 현장조사권까지 준 이유는 프랑스의 복잡한 지불체계와 관련이 있다. 프랑스 환자들은 건강보험의 몫까지 치료비 전액을 지불한 뒤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을 공단으로부터 환불받는다. 의사 입장에서는 환자가 오는 순간 이미 치료비 전액이 입금되는 셈이다. 심사는 ‘사후 환수’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진 걸 토해내려니 저항이 크다. 공단이 환자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의사·환자의 공모 가능성도 커진다. 허위 진료기록을 신고한 뒤 환자가 공단에서 돈을 받아 의사와 나누는 것이다. 내부고발 없이는 적발이 쉽지 않다.

바크 국제협력관은 “사후심사는 관리비용이 배 이상 많이 드는 데다 환자들의 부정행위도 많아 고민이 크다”며 “부당청구를 적발하기 위해 심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를린·파리=글·사진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