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1·4후퇴 때 젖먹이였는데… 61세된 딸 부둥켜안고 통곡
입력 2014-02-21 03:36
뜨거운 혈육 만난 감격의 금강산 현장
60여년간 꾹꾹 눌러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20일 오후 3시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은 한순간 울음바다가 됐다. 상봉 대상자들은 혈육을 만나 얼굴을 부비고 입을 맞추고도 가슴에 고였던 그리움을 쉽게 채우지 못하는 듯했다. 오랜 세월과 노환 탓에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금강산호텔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찾아오셔서 고맙다”…통곡, 오열=손기호(91)씨는 딸 인복(61)씨와 외손자 우창기(42)씨를 만나 통곡했다. 1·4후퇴 당시 마루까지 나와 손을 흔들던 어린 딸이 어느새 노인이 돼 있었다. 손씨는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인복씨는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면서 아버지를 껴안았다. 손씨는 세월이 내려앉은 딸의 얼굴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강완구(81)씨는 형 정구(86)씨를 안고 쓰러지듯 오열했다. 경기도 연천 휴전선 인근에 살던 형제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동생은 국군, 형은 인민군에 징집됐다. 전쟁 탓에 형제가 하루아침에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이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60여년이다. 형제는 지난해 9월에야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게 됐다. 휴전선 인근에 살았던 탓에 선친의 묘도 현재 민통선 안에 있다.
정희경(81)씨는 조카 정철균(71)씨와 만나 세상을 떠난 부모형제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질 당시 2세였던 조카는 어느새 노년에 접어들었다. 정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들의 기일과 묘소에 대해 물으면서 눈물을 쏟았다. 정씨는 “너랑 네 아버지를 (북쪽에) 두고 와서 미안하다”며 “1983년 첫 상봉신청을 할 때 아버지와 함께 북쪽의 어머니와 너를 찾으려고 신청하고 기다렸는데…. 아버지가 7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울었다. 정씨는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으며 아이처럼 “엄마, 미안해”라고 외쳤다.
◇“엄마 딸이에요” 안타까운 상봉도=이영실(88·여)씨는 북에 있는 딸 동명숙(67)씨와 동생 정실(85·여)씨를 만났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이씨는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명숙씨는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랑 나랑 서로 보고 싶어서 찾았잖아요”라며 흐느꼈다. 그러면서도 이씨의 손을 잡고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정실씨도 “언니 저예요, 왜 듣질 못해”라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씨와 동행한 딸 동성숙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혈육의 정을 나눴다. 성숙씨는 “엄마, 명숙아 해봐야, 엄마 딸이에요. 딸”이라고 외쳤다.
김영환(90)씨는 아내 김명옥(87)씨와 아들 대성(65)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중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씨가 유일하다. 전쟁 당시 혼자 먼저 피란을 내려올 때만 해도 60여년을 떨어져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김씨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씨는 연로한 탓인지 아내를 잘 알아보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씨와 아내 둘 다 귀가 좋지 않아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힘겨웠다.
이범주(86)씨는 남동생 윤주(68)씨와 여동생 화자(73)씨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전립선암으로 항암투병 중인 이씨는 “죽기 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상봉을 신청했다. 60여년을 꿋꿋하게 살아온 동생들을 보며 혼자만 남한으로 왔다는 그동안의 미안했던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부모님의 묘소와 기일을 물을 때는 서러움에 북받쳐 다시 한참을 울었다. 이씨는 동생들을 주려고 선물 30㎏씩을 꽉 채운 가방 2개를 들고 왔다.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 구급차 상봉=건강 악화로 거동이 불편한 김섬경(91)씨와 홍신자(84·여)씨는 구급차에서 가족들과 만났다.
김씨는 딸 춘순(68)씨와 아들 진천(65)씨를, 홍씨는 동생 영옥(83·여)씨와 조카 한광룡(45)씨를 비좁은 구급차 속에서 침대에 누운 채 상봉했다. 이들의 상봉은 비공개로 이뤄졌다. 취재진이 몰려가면 건강이 우려된다는 북측의 주장 때문이었다. 앞서 김씨는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구급차로 타고 상봉장에 나왔다. 하지만 김씨와 홍씨는 의료진과 상의 끝에 21일 오전 개별상봉 후 남측으로 먼저 돌아오기로 했다.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는 안타까운 주장도 나왔다. 최남순(65·여)씨는 60여 전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가 북한에 남기고 간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그러나 최씨는 상봉장에서 북측 가족에게서 건네받은 아버지 사진을 본 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과 다르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러면서도 이복동생으로 나온 이들에게 “이리 만났으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상봉행사가 끝날 때까지 같이 만나자”고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서고 있어 이들이 가족인지 최종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상봉자들은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저녁 만찬에서는 단체상봉보다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서로 준비해온 사진을 보면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고, 취재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상봉자들은 만찬으로 나온 닭고기, 야채, 송어구이 등을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가족의 정을 느꼈다. 북측은 납북자 가족에 대한 남측 취재진의 관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납북자 가족들 상봉 테이블 주변에는 북측 안내원이 여러 명 나와 이산가족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고, 남측 기자들에게도 “한 테이블에 2분 이상 하지 말라”라며 규정에 없는 주의를 주기도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