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테러 희생 김홍열씨 살릴 수 있었다

입력 2014-02-21 01:31

대사관 직원 9시간 뒤에야 도착

10분이면 도착할 병원 놔두고 3시간 넘게 떨어진 곳으로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한국인 관광객 김홍열(64·여)씨는 죽어야만 했을까.

우리 정부가 사태 수습을 위해 급파했다던 현지 대사관 직원들이 사건 발생 9시간 뒤에야 현장에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대사관에서 테러 현장까지는 최단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이집트는 촉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인근에 있던 한국인 가이드와 이스라엘 구급대의 진입을 가로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부상자들은 10여분 만에 갈 수 있는 병원을 놔두고 3시간 넘게 떨어진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송 중 사망한 김씨의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고 현지 한인 관계자는 전했다.

현지에서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이강근 이스라엘한인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사고가 나고 대사관 관계자가 나타날 때까지 9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실제로 테러는 당초 외신 보도로 알려진 오후 2시40분보다 30여분 앞서 발생했다.

이 회장의 전언은 주이집트 한국대사관과 주이스라엘 한국대사관에서 영사 등을 서둘러 파견했다며 발 빠른 대응을 강조한 정부를 무색하게 만든다. 생존자들은 대사관 직원이 올 때까지 대피소 같은 보건소 건물에 갇혀 있다시피 했다. 현장에서는 한국인 가이드 2명이 모두 사망해 생존자들은 현지인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통상 현지 대사관 2곳에서 이스라엘 접경지 타바의 테러 현장까지는 차량으로 길어야 6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인터넷 구글 지도의 길 찾기 기능으로 측정했을 때 이집트 카이로의 대사관에서는 5시간23분(418㎞) 거리다. 이스라엘 헤르츨리야의 대사관은 더 가깝다. 40번 도로를 타면 3시간48분(361㎞), 90번 도로를 타면 4시간21분(392㎞) 거리다.

이 회장은 “사고 직후 생존자를 찾아가 기도해주고 위로해주려고 그렇게 수소문을 했지만 한인회장인 저도 알 길이 없었다”며 현지 교민과 소통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를 지적했다.

이집트 당국의 대응 방식도 피해를 키웠다. 이스라엘 에일라트에선 폭발 직후 몇 분 만에 구급차 20여대가 현장 인근 국경까지 배치됐지만 이집트 측이 진입을 거부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 보도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쪽 국경에 있던 한국인 가이드가 현장에 들어가 통역 등을 돕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고 이 회장은 전했다.

부상자들이 옮겨진 샤름 엘셰이크 국제병원은 테러 현장에서 226㎞, 차량으로 3시간30분 거리다. 이스라엘 에일라트 중심부에는 현장에서 14분 만에 갈 수 있는 요세프탈 의료센터가 있었다.

이 회장은 “사망한 권사님(김홍열씨)이 테러 직후 버스에서 내리실 정도였는데 이송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며 “에일라트로만 보냈어도 사셨을 텐데 너무 아쉽고 이집트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