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영화 ‘행복한 사전’ 홍보차 방한한 오다기리 조 “배우란 내가 아닌 인물을 표현해내는 사람”
입력 2014-02-20 01:36
일본영화 ‘행복한 사전’(감독 이시이 유야)엔 쉬워 보이지만 바로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게 ‘오른쪽’이 무슨 뜻인지 묻는 질문이다. ‘오른쪽’은 뭐라고 풀어써야 할까.
‘행복한 사전’은 일본어사전을 만드는 한 출판사 사전 편집부 사람들을 다룬 작품. 출판사 영업부 직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는 사전 편집부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는 자리에서 ‘오른쪽’을 이렇게 정의한다. ‘서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북쪽에 해당하는 쪽.’
이 외에도 영화엔 ‘오른쪽’에 대한 다양한 뜻풀이가 등장한다. ‘시계의 문자판을 보고 섰을 때 1시에서 5시까지가 있는 쪽’ ‘사전을 펼쳤을 때 짝수 페이지가 있는 쪽’….
영화엔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얼굴이 출연한다. 바로 일본 톱스타인 오다기리 조(37·사진)다. 그는 마지메를 사전 편집자의 길로 이끄는 편집부 직원 마사시 역을 연기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영화 홍보를 위해 방한한 오다기리 조를 만났다. 만약 오다기리 조가 영화 속 배역처럼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는 ‘배우’의 뜻을 어떻게 풀이할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가 내놓은 답변은 이랬다.
“배우(俳優)에서 배(俳)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가 붙어 있어요. 여기에 빼어날 우(優)를 더한 단어가 배우인 거죠. 즉 내가 아닌 인물을 빼어나게 표현해내는 사람, 그게 배우 아닐까요? 물론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건 배우가 본래 가진 성격이 역할에 묻어날 수밖에 없겠지만.”
‘행복한 사전’은 묘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15년간 묵묵히 사전 만들기에 매진하는 마지메. 영화는 그를 통해 이상(理想)을 좇아 정진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그런데 마지메는 왜 이토록 사전 제작에 강한 애착을 보일까. 영화 속엔 이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단어의 바다는 끝이 없다.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다.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를 타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할 말을 찾는다. (우리가 만드는 사전은)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이 돼야 한다.”
영화를 보며 의아해지는 건 오다기리 조가 맡은 배역의 비중이다. 1999년 연극으로 데뷔한 그는 지난 15년간 일본에서 손꼽히는 톱배우였다. 하지만 ‘행복한 사전’에서 그는 일개 조연일 뿐이다.
“원래 주인공 역할을 맡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주연을 맡으면 자유로움이 없거든요. 주연은 캐릭터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보니 배우가 (시나리오에 표현된) 캐릭터를 흔들 수가 없어요. 반면 조연의 경우 배우가 자신의 뜻에 따라 특정 인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죠. 더 매력적이에요.”
오다기리 조는 ‘행복한 사전’을 이렇게 소개했다. “아날로그 문화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장인 정신이 무엇인지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20일 개봉. 전체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