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때문에… 책임경영 압박에… 경영 손 떼는 총수 늘 듯

입력 2014-02-20 02:32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경영에 손을 떼는 재벌 총수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법적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가 하면, 책임경영이나 경제민주화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 발을 빼는 경우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가 경영 전면에 나서 그룹 전체를 이끌던 한국식 기업경영 패러다임이 법적 제재와 새로운 규제 탓에 점차 바뀌는 분위기다.

김 회장의 사임은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법적 판단에 따른 조치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해당 업체의 사업허가 취소 및 업무제한 조치를 받게 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및 최재원 부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법적 판단을 앞두고 있는 그룹 총수들 역시 법원의 판단에 따라 대표이사 자리를 내려놓는 등 경영 방식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 이들 역시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될 경우 경영권 참여가 제한되고, 대신 전문경영인이 경영 전면에 나서야 한다.

실제 SK그룹은 최 회장의 구속에 앞서 지배구조를 개편해 전문경영인인 김창근 부회장을 그룹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내정했다. 이처럼 총수 일가는 대주주로 남아 큰 틀에서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잡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체제가 보편화 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다음 달부터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보수가 공개되는 것도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사임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각각 롯데쇼핑과 신세계·이마트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재계에서는 연봉 공개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본다. 다음 달에 열릴 예정인 주요 그룹의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적지 않은 오너들이 등기이사에서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관계자는 “다양한 법적 규제가 도입되면서 오너가 나서 기업을 이끌던 문화가 변하고 있다”며 “많은 기업들이 창업 3∼4세 경영을 앞두고 있어 한국형 오너경영의 변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