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4) 내 소중한 유년의 추억 ‘개울 건너 작은 시골교회’
입력 2014-02-20 01:32
어머니는 눈물을 계속 흘리시며 일곱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곧장 ‘제중의원’이라는 병원을 찾아가셨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누가 이 아이가 죽는다고 했느냐? 절대 죽지 않는다”며 안절부절못하던 어머니를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한 달간 치료를 받은 나는 거의 회복할 수 있었다. 무슨 병이었는지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때를 떠올리시며 목사가 된 아들에게 설교하시곤 했다. “사람이 말 한마디에 살고 말 한마디에 죽는다. 더구나 너는 목사이니 목사의 설교 한마디에 죽을 사람도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맞는 말씀이다. 내가 위로, 용기, 생명, 부활, 은총, 용서, 긍정, 소망 같은 것을 설교 주제로 삼아 평생 말씀을 전한 까닭이다. 목회를 하면서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던져주면 시들어 가던 영혼 안에서 생기가 솟아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깨닫게 됐다.
어린 시절 나는 주로 형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다. 개울 건너에 조그만 시골교회가 있었는데 살미순복음교회라고 불렸다. 반사 선생님은 소아마비장애를 가진 처녀였다. 당시에는 교회학교 교사를 반사라고 불렀다. 그 선생님은 컴퓨터나 복사기는 물론 주일학교 공과 책 한 권도 없던 시절에 유일한 교재인 성경책으로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누런 16절지 종이를 8번 접으셨다. 그리고 침을 발라가며 연필로 성경말씀을 8차례 반복해 적으셨다. 가위로 그것을 오린 뒤 꼬리표 같이 만드셨다. 주일 아침 어린이들이 교회에 나오면 성경 이야기를 하나씩 해준 뒤 꼬리표 성경말씀을 나눠주며 다음 주일까지 외워 오라고 하셨다.
외워 오는 어린이가 거의 없자 선생님은 숙제를 해 오면 눈깔사탕을 하나씩 나눠주신다고 했다. 그래도 숙제를 하는 어린이들은 별로 없었다. 필자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매주 성경요절 말씀을 꼬박꼬박 외워 갔다. 요한복음 3장 16절부터 시작해서 무수히 많은 성경말씀을 외우고 또 외웠다. 그것이 당시 교회학교 교육의 거의 전부였다.
당연히 눈깔사탕은 내 몫이었다. 사탕을 먹고 싶은 친구들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는 자랑스럽게 친구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딱 한 번씩만 혀를 돌려 빨아먹게 했다. 혀를 두 번 돌리면 반칙이었다. 반칙을 하면 다음 차례에서 제외시켰다. 물론 사탕을 우지끈 깨물어 자근자근 씹어 먹는 영광은 내 차지였다.
어느 해 겨울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성탄축하 예배, 떡국 파티 등으로 온 교회가 분주했다. 성탄절 전날이면 항상 어른들과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모여 성탄축하 발표회를 열었다. 교회에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성도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합창했다.
동물 모양의 탈을 쓰고 나와 아기 예수님께 절을 하고 대사를 했던 연극 발표회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덩치가 크고 뚱뚱했던 필자는 돼지 역할을 맡았다. 무엇인가 대사를 해야 했는데 예수님께 드릴 말씀이 마땅치 않았다. 궁리 끝에 이런 말씀을 드렸다.
“아기 예수님, 저는 돼지예요. 사람들은 저보고 더럽다고 해요. 욕심꾸러기라고 해요. 살만 뒤룩뒤룩 쪘다고 흉을 봐요. 아기 예수님 저는 제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서 이 몸을 몽땅 드립니다. 제 몸을 바치니 삼겹살 맛있게 구워 드세요. 제 족발도 맛있다고 하네요.”
교회는 한바탕 웃음으로 뒤집어졌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재주도 없고 그저 우직하게 몸 바쳐 주의 일을 하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돼지의 삶을 살도록 해주셔서 감사하다. 감사하게도 그 돼지의 삶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