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어머니 향기 남기고… 연극·영화계 ‘영원한 어머니’ 황정순씨 별세

입력 2014-02-19 02:32


한국 연극·영화계의 ‘영원한 어머니’ 황정순씨가 별세했다. 향년 89세.

황씨는 최근 폐렴이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던 중 17일 오후 9시45분 숨을 거뒀다고 유가족이 18일 전했다.

고인은 194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약 50년간 배우로 활동했다. 8·15 광복과 6·25전쟁, 전후 산업화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에 인내와 자애를 바탕으로 포근한 어머니상을 연기했다.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인 1940년 동양극장에서 연극을 하다 이듬해 허영 감독의 ‘그대와 나’에 출연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광복 이후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에서 며느리 역할로 주목을 받았고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김수용 감독의 ‘혈맥’(1963)에서는 억척스러우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어머니 모습을 연기했고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에서는 가족을 따뜻하게 보듬는 새엄마의 연기가 돋보였다.

유현목 감독의 ‘장마’(1979)에서는 분단의 상처를 지닌 어머니로, 김수용 감독의 ‘굴비’(1963)에선 어렵게 키운 자식에게 홀대당하는 어머니로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1967년부터 김희갑과 호흡을 맞춘 ‘팔도강산’ 시리즈도 수작으로 꼽힌다. 고인은 생전 연극 200여편, 영화 430여편에 출연했다. 대표작으로는 ‘김약국의 딸들’ ‘화산댁’ ‘내일의 팔도강산’ ‘육체의 고백’ 등이 있다.

역대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 최다 수상자이자 제1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고인은 2007년 ‘영화인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신상옥 감독과 유현목 감독에 이어 세 번째다. 2005년부터 치매를 앓은 고인은 지난해 열린 제50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발전공로상 수상 직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수상 소감을 반복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이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