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3) 어머니, 비녀 꽂은 머리칼 잘라 팔아 참고서를
입력 2014-02-19 01:35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땅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가난함 속에서도 어머니는 자식들을 철저하게 가르치시느라 무던히도 애쓰셨다. 매를 드는 일도 주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모든 가정을 일일이 돌보실 수 없어 가정마다 하나님의 대리자를 세우셨는데 그 존재가 어머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만큼 큰 존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께서 어느 참고서를 사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책을 살 돈이 없었다. 어머니께 돈을 달라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뒤 시험을 봤는데 그 참고서에 실린 문제가 그대로 출제됐다. 책을 사서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100점이었으나 나는 95점이었다.
얼마나 억울하고 서럽던지 집에 와서 울면서 떼를 썼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한숨을 쉬시며 돈을 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은 비녀를 꽂은 어머니의 머리칼을 잘라 가발장수에게 팔고 받으신 것이었다.
중학생 때에는 참고서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돈이 없다’는 답을 듣고 부아가 났다. 어머니께 대들었다. “일꾼에게 일을 시키려면 연장을 줘야지 연장도 안 주고 일을 시키면 어떡해”라며 막 덤벼들었다. 안방에 벌러덩 누워 시위를 하다 그만 잠이 들었다.
갑자기 얼굴에 불이 확 나 눈을 떴다. 어머니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다. 더 맞지 않으려고 집을 뛰쳐나갔다. 충북 충주의 남산 밑에 조그만 저수지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까지 올라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라 계모처럼 여겨졌다. 그렇지 않고서야 참고서도 안 사주고 아들을 이렇게 매 자국이 나도록 때리실 리 없었다. 저수지에 뛰어들 몹쓸 생각까지 했지만 손을 물에 담가보니 너무 차가웠다. 죽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해가 넘어가서야 집에 들어갔다. 웬일인지 어머니의 얼굴이 부드러워 보였다. “홍렬아! 밥 먹어라”고 하시면서 평소처럼 상을 차려주셨다. 밥을 먹고 피곤했는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때 얼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
“하나님,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참고서도 사주지 못하면서 매질까지 했습니다. 제가 능력이 없어 더 잘 가르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잠자는 시늉을 했다. 어머니는 93세로 하늘로 떠나셨다. 하늘나라에서 다시 뵈면 그때의 철없던 행동을 회개하고 눈물로 용서를 빌겠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어머니 속을 썩인 건 일곱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별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어머니가 42세에 늦둥이를 막 낳으신 때였다. 내 증상이 더 심해지자 출산 후 3일도 안 된 몸으로 어머니는 나를 등에 둘러업고 20리 길을 걸어 충주 도립병원을 찾아가셨다.
당시 병원을 지키던 젊은 의사가 보기에 나는 귀찮고 성가신 환자였던 것 같았다. 그는 “이 아이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으니 집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이나 해 먹이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 하나를 강물에 보낸 어머니인데 아들 또 하나를 그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의사에게 매달리셨다. 그는 알약 몇 개를 처방해줬다고 한다. 도립병원 정문을 나온 뒤 어머니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계속 흘리셨다. “너마저 보낼 수는 없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다시 나를 업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셨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