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 1심 유죄] 재판부가 본 조직 실체 “조직원 가입·교육 등 RO, 민혁당 능가하는 수준”

입력 2014-02-18 02:31

수원지법 형사12부는 17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총책인 지하조직 ‘RO’의 성격에 대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유사하지만, 민혁당을 능가하는 독자적 특성이 있다”고 밝혔다. 1992년 결성된 민혁당은 2000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구성된 반국가단체”라고 규정됐다. 이 의원은 민혁당 사건의 마지막 투옥자였다. 그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하다 구속돼 2003년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재판부는 RO와 민혁당의 유사성으로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점’ ‘조직 보안을 위해 강령·규약을 성문화(成文化)하지 않고 암기하도록 하는 점’ ‘조직원 간 위장 명칭을 사용하는 점’ ‘전자저장 매체 암호화 프로그램 사용’ 등을 들었다.

이 의원은 출소 직후 민혁당 잔존 세력을 규합하는 동시에 민혁당 실패 원인을 분석해 새로운 지하 혁명조직을 모색했는데 그 결과물이 현재의 RO다. 공안 당국이 지난해 8월 이 의원의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그의 자필 수첩에도 ‘영도체계’ ‘조직보위’ ‘사상학습과 검열’ 등 민혁당 때보다 강화된 활동 구상이 담겨 있다.

재판부 역시 RO가 조직 운영 차원에서 민혁당을 앞서는 것으로 판단했다. 조직원 가입 절차 강화, 분기별 총화(사업평가) 등을 통한 사상검열 강화 및 비상시 횡적·종적 연계를 통한 유연한 대응체제 구축 등이 그 예다. RO는 학습모임이나 이념서클 등을 통해 예비 조직원을 철저히 사상학습시키고, 사상 성향이 투철한 자를 엄선해 해변이나 산악 지역의 인적이 드문 민박집 등에서 은밀한 가입 절차를 진행했다. 이 의원 주거지에서 압수된 기본강의안에는 ‘(조직원은) 자신의 모든 것을 조직에 보고하고, 집행은 무조건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재판부는 RO 조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수령론’과 ‘혁명적 낙관주의’를 내면화하면서 상부의 명령을 관철시킬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봤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명시적인 ‘적’이었다. 재판부가 RO를 ‘철저한 사상 무장과 지휘체계로 정예화된 지하혁명조직’이라고 규정한 뒤 “내란의 주체로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철저한 ‘조직보위’의 벽에 가려 있던 RO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내부 조직원의 제보 때문이었다. RO 초창기인 2004년 조직원이 된 이모씨는 조직 지침에 회의를 느끼다 2010년 5월 국정원 홈페이지에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이후 이씨의 협조 속에 RO 조직원들에 대한 동향 추적이 진행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