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공사 입찰 과정서 담합·금품수수 횡행

입력 2014-02-18 02:33


국보 1호 숭례문의 졸속 복구에서 비롯된 문화재의 총체적 부실 관리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3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보고에서 “쌓여 왔던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자격증 불법 대여가 적발되고, 광화문과 숭례문 목재 바꿔치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며 문화재 행정의 난맥상을 질타했다. 나아가 “문화재청은 환골탈태의 각오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까지 우려를 표명한 문화재 관리부실 실태와 그 개선책을 3회에 걸쳐 심층 진단한다.

(上) 복마전 문화재 공사

문화재청은 요즘 ‘멘붕(멘탈붕괴)’ 상태다. 1999년 개청 이래 처음으로 감사원 감사와 경찰 조사를 동시에 받고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졸속 공사와 대목장 경찰 수사, 단청장의 자격증 불법 대여 사건, 현직 국장의 ‘숭례문 세우기’ 출간 등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올해 주요업무계획을 언론에 브리핑하는 자리에서도 ‘문화유산 관리체계 정상화’에 초점을 맞춘 몇 가지 방안을 내놓았으나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고질적인 병폐를 수술하지 않고는 문화재청의 환골탈태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문화재 공사 현장은 복마전=숭례문 부실복원 공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문화재청 공무원들이 공사 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사실을 최근 포착했다. 지방의 건설업체 대표를 소환해 “문화재청 전현직 공무원들에게 ‘공사 진행 과정에서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백만원씩의 향응과 금품을 제공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경찰 수사 중이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화재청 직원과 문화재 수리업체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는 공사업체 입찰 과정에서 출발한다. 여러 개 업체를 소유한 한 업체가 동시에 입찰에 나서 담합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업체는 공사수주 대가로 금품 등을 제공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전통기술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문화재 공사=숭례문 복원공사에서 보듯 문화재 수리 전통기술이 50년 넘게 끊기는 바람에 엉터리 공사가 비일비재하다는 지적도 많다. 최근 북한산성(사적 162호) 정자 건축 과정에서 실측을 잘못해 기둥이 비뚤어지는 일이 생기고, 부산 금정산성(사적 215호) 망루는 지은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단청이 거의 다 떨어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의 한 문화유산 단체 관계자는 “2005년 등록문화재(171호)로 등록된 서울 누하동 청전 이상범 화백의 가옥과 화실은 2011년에 리모델링하면서 애초 설계를 잘못해 다시 지었다”며 “공사를 맡은 사람이나 행정 당국이나 책임감도 없고 무사안일의 태도여서 예산 낭비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책정된 예산은 7000만원으로 설계 잘못으로 인한 추가 지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관리 주체 놓고 서로 떠넘기는 문화재 관리 행정=정부가 진행 중인 문화재 부실관리 종합점검 대상은 전체 1만1306건 가운데 59.7%인 6752건이다. 문화재 발굴 및 보존은 문화재청이 맡고 있으나 관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다. 문화재청에는 지방청이 없고 관리 인력과 예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숭례문도 문화재청에 보존 책임이 있었지만 실제 관리는 서울시와 중구청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숭례문 화재 책임도 문화재청과 서울시 사이에 떠넘기기 공방이 일었다.

숭례문의 경우 화재 이후 문화재청이 전적으로 책임을 맡고 있으나 지방에 산재한 국가지정문화재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많다. 야간 경비 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재 등에 무방비 상태다. 또 사찰 등 지역 문화재 공사의 경우 소유자가 공사비의 20%, 국가 또는 지자체가 80%를 부담하는 보조사업도 브로커까지 끼어드는 등 비리의 온상이라는 지적이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