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업계 저가 출혈 경쟁·정부 ‘뒷짐 대응’… 안전불감증 참사

입력 2014-02-18 02:33

이집트 시나이 반도 타바에서 발생한 한국인 성지순례자 폭탄 테러 사고는 정부와 여행업계의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는 지적이다. 업계는 정국 불안 등으로 여행 수요가 급감하자 저가 출혈 경쟁을 벌이다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집트 시나이 반도는 2년 전부터 외교부가 여행 유의·자제·제한·금지 총 4단계 여행경보 가운데 3단계(여행 제한)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성지순례 상품을 판매하는 대다수 여행사들은 위험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었다. 또 비용절감 차원에서 버스 이동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집트 성지순례 전문 A여행사 관계자는 17일 “시나이산 인근에서 육로로 이동하는 사람은 한국인들밖에 없다”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육로 이동을 택한 만큼 무장 경찰을 고용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대부분 시나이산 관광 시 인근의 샤름엘셰이크 공항을 통해 항공편으로 국경을 넘지만, 이 경우 비용이 1인당 100만원 이상 늘어나는 탓에 국내 여행사 상당수는 버스로 일정을 진행한다는 얘기다.

이번 패키지 상품도 1인당 300만원 정도의 저가 여행을 성사시키기 위해 육로 관광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10일 밤 인천공항을 출발한 교인 31명은 터키와 이집트를 거쳐 사고 당일인 16일 전용버스를 이용해 이스라엘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그는 “육로로 이동할 경우 버스 문을 열지 않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이집트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짐을 내려야 할 때는 무방비 상태에 가깝다”며 “버스로 이동하는 14시간 동안 초소를 지날 때를 제외하곤 언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B여행사 관계자도 “이 지역에서는 단체 관광객이 이동할 경우 통상 관광경찰이 무장하고 동승한다”며 “이번에는 이런 조치가 왜 없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2011년 ‘아람의 봄’ 이후 치안이 악화됐음에도 강제성 없는 ‘여행 제한’ 조치만 내놓고 뒷짐을 진 정부의 대응 역시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행사들의 영업이 계속되고 성지순례를 위한 한국인 단체관광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다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6월 성지순례 패키지 상품으로 시나이산을 방문했던 김모(37·여)씨도 안전 불감증을 비판했다. 그는 “이집트 내부 사정이 굉장히 불안했지만 누구도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리지 않았다”며 “여행사는 ‘위험지역은 가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확히 8개월 뒤 김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는 “이번에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여행업계는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으로 추정되는 성지순례 전문여행사를 통해 연간 4만여명이 성지순례에 나서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직후 성지순례 여행사들은 예약자들로부터 취소·환불 절차를 밟거나 이집트 대신 터키나 유럽 일정으로 대체하고 있다.

김유나 박요진 기자,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