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2월 18일] 위로부터 온 지혜를 구합시다

입력 2014-02-18 01:35


찬송 :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88장(통 20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3장 13∼18절


말씀 : ‘여러분 가운데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선한 생활로, 그리고 지혜로운 겸손의 행위로 그것을 나타내 보이십시오.’(현대인의 성경·약 3:13)

본문에서 야고보 선생은 지혜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적인 지혜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14∼18절). 세상적인 지혜는 마음에 독한 시기심을 가진 가운데 다툼 속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발휘했던 지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지혜는 항상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으로 나타나며 요란함과 악행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그런 악한 지혜를 가리켜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반해 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17절). ‘성결하다’는 말은 세속에 물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악하지 않다는 뜻이고, 타락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지혜를 좇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며 투명합니다. 오염되어 있지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습니다. 앞과 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이처럼 성결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 평화의 관계를 이루는 일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는 사람은 설사 악함으로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자신은 그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의 관계를 이루어나갑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관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관용’이라는 말이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말의 의미처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알면서도 관대한 마음으로 그냥 모른 척 지나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용은 다른 사람의 죄를 정당화시키거나 묵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과 같이 그 연약한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양순합니다. ‘양순’이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넓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양순한 사람은 자기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합니다. 때문에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또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긍휼’은 이웃의 어려움을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선한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또한 그런 지혜의 사람에게는 편견과 거짓이 없습니다.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공정하고 공평합니다. 야고보 선생은 오늘 본문을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이 말씀은 지혜에 관한 말씀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나에게도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과 삶을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성원 목사(광주중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