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사상 처음으로 ‘낙하산 인사’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 형사처벌키로 했다. 정부와 산하기관 사이의 오랜 관행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어서 공직사회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16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특판조합) 임원추천위원 6명 정도가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간부에게서) 공정위 출신 인사를 이사장으로 선출하라는 구체적 압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추천위원 중 특판조합 관계자 외에 외부 인사들도 “외압을 받았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해부터 공정위 간부들의 특판조합 이사장 선임 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늦어도 다음 달 초 낙하산 인사에 관여한 간부들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특판조합은 다단계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2002년 설립된 기관이다. 감독관청인 공정위 출신 인사들이 이사장직을 독식하면서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경찰은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낙하산 인사에 개입한 공정위 간부들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키로 방침을 세웠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행위’로 정의돼 있다. 검찰과 법원 관계자들은 “법조문을 엄격하게 해석하면 이번 사안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물증을 찾기 어려운 수사여서 수사기관이 확보한 진술의 신빙성이 유·무죄를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2010·2012년 특판조합 임원추천위를 중심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2010년 추천위원은 조합업체 인사 3명, 외부인사 3명, 특판조합 상근직원 1명 등 7명이었다. 2012년에는 조합업체 인사 3명, 외부인사 5명, 상근직원 1명 등 9명이었다. 경찰은 당시 공정위 1급 공무원 등 핵심 간부들이 특판조합 간부를 접촉해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1급 공무원은 지난해 공정위 부위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정호열, 김동수 전 공정위원장도 조사를 받았다.
강신명 서울경찰청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수사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법원 판례를 새로 만드는 일”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낙하산·전관예우에 수사기관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첫 사례여서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거는 수사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공직사회에는 우려와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다단계 업체들이 모인 특판조합의 특수성을 간과한 수사”라고 반발했다. 혼탁한 다단계 시장을 제대로 감독하려면 조합 이사장 선정과정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특판조합 일부 인사의 음해성 민원에 경찰이 휘둘렸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정위 다른 관계자는 “검찰에 알아보니 ‘기소도 못할 뿐더러 법원에 가도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얘기하더라”고 했다.
다수의 산하기관을 가진 경제부처 관계자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이 우려된다.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처럼 산하기관이 많은 부처는 어디든 표적이 될 수 있다”며 “경찰도 산하기관에 경찰 출신을 보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다른 부처 관계자도 “산하기관에서 (인사를) 추천해 달라는 경우도 많다. 금품 비리도 아닌데 직권남용이 받아들여질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단독] “낙하산 인사, 직권남용으로 첫 처벌”… 특판조합 이사장 추천위원들 “공정위서 압박” 진술
입력 2014-02-17 02:31 수정 2014-02-17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