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러시아 국적으로 금메달을 따자 파벌 간 담합, 승부조작 등 국내 빙상계의 고질적인 파벌싸움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안현수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을 일궜으나 이후 2008년 훈련 도중 무릎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후 세 차례 수술대에 오르면서 2010년 밴쿠버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어 2010년 소속팀 성남시청이 해체되는 불운까지 겹쳐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한국에서 외면당한 그는 2011년 12월 러시아로 귀화했다. 여기까지가 안현수가 러시아행을 택한 표면적 이유다. 그는 해묵은 빙상계 파벌싸움의 희생자로 부각됐다. 진실은 뭘까.
◇안현수는 왜 ‘빅토르 안’이 됐나=안현수를 둘러싼 갈등은 그가 최고 기량을 뽐냈던 2006년 토리노대회 때 불거졌다.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의 이호석은 “1500m에서 안현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기 위해 일부러 추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호석은 당시 은메달을 땄다. 이에 안현수는 “금메달이 선수로서 최고 영예인데 양보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이호석 측은 “당시 쇼트트랙 결승에 우리선수 2명이 올라가면 두 명이 역할분담해 1명은 뒤에서 다른 선수들의 추월을 막는 역할을 했는데, 안현수는 양보를 안 하고 금메달을 혼자 독차지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남자 대표팀은 금3·은2·동1로 최고 성적을 냈지만 낯 뜨거운 설전으로 빛이 바랬다.
파벌 논란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 때도 불거졌다.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밴쿠버 2관왕 이정수가 2010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은 빙상연맹의 부조리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대한체육회는 “당시 코치가 선수의 메달 획득을 위해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2009∼2010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일부 코치, 선수들이 서로 협조하고 협의한 사실도 인정했다. 말로만 무성했던 파벌 간 ‘짬짜미’, ‘나눠먹기’ 실체가 처음 확인된 셈이다.
◇복잡하게 얽힌 파벌 논란…안현수도 수혜자?=빙상계의 파벌 논란은 장기간 복잡하게 얽혀 있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섣불리 단정하기 힘들다.
파벌 논란의 중심에는 ‘금메달 제조기’로 불리는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가 있다. 한체대 출신인 전 부회장이 파벌다툼의 근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안현수도 파벌싸움의 수혜자라는 주장도 나온다. 안현수는 16세이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대회 때 16세로 선발전 치르지 않는 특혜로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를 발탁한 게 전 부회장이다. 당시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4년 뒤 토리노 대회 때 3관왕에 올랐다. 이어 한체대 졸업 후 전 교수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 부회장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한체대가 좋은 선수들을 키워내고 스카우트하니까 과거의 독과점을 누리지 못하는 쪽에서 시기하고 파벌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적극 항변했다. 그 역시 과거 빙상연맹을 좌지우지했던 한 인사를 반대파의 배후로 지목했다. 이후 ‘전명규 라인’ 대 ‘비(非) 전명규 라인’ ‘안현수 대 비안현수’ 등 온갖 대결 구도가 구설에 올랐다. 쇼트트랙 강국이었던 우리는 올림픽 메달보다 대표 선발전이 더 힘들다고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실력보다는 줄”이라는 얘기도 회자된다. 결국 누가 옳은지를 떠나 파벌싸움 때문에 좋은 선수가 오래 빙판 위에 남아 있기 힘들고, 새로운 선수들을 키워내는 시스템이 붕괴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소치올림픽] ‘빙상연맹 파벌다툼’ 실상은… 국가대표 선발 되려면 스케이트 실력보다는 줄서기?
입력 2014-02-17 02:31 수정 2014-02-17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