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1) 60년전 영월군 주천면에 핀 ‘믿음의 씨앗’ 한 톨
입력 2014-02-17 01:36
사족인줄 알지만 너스레를 조금 떨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고장난 벽시계’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이다. 목회 현장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잠깐 짬을 내어 뒤돌아보니 이 노랫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만한 나이가 됐다.
아직도 마음은 20대 신학생인데 무심한 세월은 필자를 환갑의 나이까지 데려다놨다.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있으니 환갑은 젊은 축에 낀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 가서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머쓱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아직은 인생과 신앙에 대해 간증을 하기에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또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삶을 살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한 삶이 어떤 감흥을 주겠는가, 진심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귀한 기회가 주어졌으니 인생과 믿음의 후배들에게 진솔하게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느냐’ ‘무언가 드라마틱하고 반전이 있는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보다 늘 옆에 있는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실감나고 진솔하게 다가갈지 모르는 일 아니냐’는 끈질긴 설득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시골 동네가 있다. 면소재지치고는 제법 큰 마을이다. 지금은 ‘다하누촌’이라고 해서 한우를 파는 곳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다. 또 ‘꼴뚜국수’라는 메밀국수를 파는 집이 있어서 멀리 서울에서도 그 맛을 보러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꼴뚜국수는 가난한 시절 하도 많이 해 먹어서 ‘꼴도 보기 싫다’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강원도 산골 가난한 화전민의 그 음식이 지금은 각종 매체에 보도되면서 유명세를 탄 것이다. 추억으로 한 그릇, 맛으로 한 그릇,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러 맛을 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필자가 태어난 곳이 바로 그 주천면 신일리 금산 밑이다. 여기서 각각 13세, 16세이던 이원영씨와 정석순씨가 결혼해 아들, 딸을 번갈아 낳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두 분이 60년 전 낳으신 7번째 사내아이가 바로 필자다.
내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의 폭격 때 파편에 맞아 돌아가셨다. 위로 형제 셋이 난리통에 홍역을 앓다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불행한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중학생이던 필자 바로 위의 형은 주천강에서 멱을 감다 익사했다.
잠수부를 동원해 30리를 떠내려간 시신을 수습해 마당으로 옮겨 거적을 덮어놨던 가슴 아픈 장면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자식 앞세우는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생때같은 아들이 한낮에 집을 나가 저녁에 시신이 되어 돌아왔으니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아버지는 술로, 어머니는 한숨으로 세월을 삭이며 사셨다.
그러나 헤어날 수 없어 보이던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믿음의 싹을 틔워주셨다. 그 믿음 덕분에 우리 가족의 삶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약력 △1953년 강원도 영월 출생 △연세대 신과대학 및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루터신학원 졸업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 △CBS기독교방송 이사 △대한성서공회 이사 △국제루터교평의회(ILC) 실행위원 △현 기독교한국루터회 한국베델성서연구원 원장, 한국찬송가공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