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같은 비주류 당당한 그들의 삶… 하종오 시집 ‘신강화학파’

입력 2014-02-14 01:34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에 정제두를 비롯한 양명학자들이 강화도를 중심으로 형성한 학파를 일컫는다. 1709년(숙종 35), 정제두가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소론들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강화도로 물러나 은거하자 이광사, 이광려, 신대우, 심육, 윤순 등 소론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강화학파는 200여 년 동안 학맥을 이어나갔다. 이들 학파는 실학파와도 손을 잡았으며 당쟁의 폐해를 비판하며 강화로 낙향하였던 이건창과 식민지 시대 국학진흥에 힘썼던 정인보 등으로 그 맥이 이어졌고 신채호 박은식 김택영 등 한말 민족주의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종오(60·사진) 시인의 신작 시집 ‘신강화학파’(도서출판b)는 조선 후기에 창설된 ‘강화학파’에 착안하여 ‘신강화학파’라는 가상적 학파를 설정한다. “강화학파의 한 사람이라는 자는 한마디 더 하고 휴대폰을 끊었다/ 선생이 시인이라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남을 살펴보는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데라면/ 어디든 이주할 작정하고 있던 나는/ 이십여 년 만에 서울을 떠나/ 강화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속내를 알아차렸다”(‘강화학파 첫인사’ 부분)

한때 강화도에서 홀로 기거하며 창작활동을 하던 하종오는 최근 가족까지 불러들여 이른바 ‘신강화학파’를 창설한다. 그런데 신강화학파는 고전적 엘리트 집단이었던 옛 강화학파와는 달리 농부, 기술자, 막일꾼 등으로 구성된다. “동막리 산다는 사람은 삼백두 살 농부라 했고/ 외포리 산다는 사람은 이백다섯 살 기술자라 했고/ 국화리 산다는 사람은 백열세 살 막일꾼이라 했다”(‘자칭 신강화학파’ 부분)

이들 신강화학파 사람들은 물리적인 사실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연령대로 설정된다. 이는 신강화학파가 강화학파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흐름임을 보여주지만 내용면에서는 전혀 다른 구성원임을 드러낸다. 하종오는 신강화학파가 강화의 정치나 경제를 좌지우지 하지는 못해도 강화의 햇빛과 바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며 허명을 구하지도 않고 순결하게 살아간다는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강화의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라는 역설적 함의를 부여한다. 그렇다면 신강화학파의 실체란 무엇일까.

“그들은 서로 들풀과 바람과 햇빛을 맞바꾸고/ 들풀과 바람과 햇빛은 번갈아 그들을 맞바꾸는 걸/ 나는 보면서 무언가 더 보았다/ 내가 그들이 되어 여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들이 내가 되어 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중략)/ 그때 나는 그리 따라하면서 다른 내가 되었다”(‘신강화학파’ 부분)

‘다른 내가 되었다’는 구절은 존재의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하종오식 리얼리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도 사회적 주류로 살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시로 소환해 당당히 주류의 지평에 올려놓는 힘이 하종오 시의 진면목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