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한 고위급 첫 대화 유익했다

입력 2014-02-13 02:21

향후 대북 협상, 유연하면서도 원칙은 굳건히 지켜야

남북한 고위급 접촉은 무려 6년2개월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7년 말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직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색된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어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안했지만 1년간이나 북이 호응하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 양측 정상의 의중을 정확히 읽고 있는 차관급 고위 인사가 공개적으로 머리를 맞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 개선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12일 판문점에서의 첫 접촉에서 남북은 자기 측 입장을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상대방 의중을 타진했다.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핵문제 해결의 중요성,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대북정책을 상세히 설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측도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의 위협,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오전부터 심야까지 진행된 고위급 접촉은 진통을 겪었지만 상당히 유익했다고 본다. 양측이 충분하면서도 깊숙한 대화로 신뢰 형성의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접촉을 남북 화해·협력의 장을 여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접촉에서 사소한 문제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몇 가지 핵심적인 대북 원칙은 굳건히 지켜나가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은 차제에 반드시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이후 약 10년간 이산상봉은 수개월 만에 한번씩 꼬박꼬박 열렸다. 오는 20∼25일 이산상봉이 성사되면 4년 만이다. 이 문제는 북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북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강하게 요구할 텐데 관광 중단의 직접적 이유인 남측 관광객 총격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이 요구하는 5·24조치 해제 역시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받아내기 전에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해서는 북핵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북은 핵 문제의 경우 미국이나 중국과 직접 거래하려 하겠지만 남한을 배제하고서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수없이 언급했듯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적용의 기본 전제가 핵문제 해결 아닌가.

북한은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측 생각을 타진한 것으로 짐작된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였던 2009년에도 북은 정상회담을 희망했었다. 정상회담은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노무현-김정일 회담 이후가 말해주듯 국민 공감대와 남북 간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한다.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