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무늬만 메디텔 될라
입력 2014-02-13 01:36
메디텔의 시대가 오고 있다. 3월부터 1000명 이상 외국인 환자 진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의료법인)과 500명 이상 의료관광객을 유치한 사람(법인)이면 누구든 메디텔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3월 1일부터 시행한다. 메디텔이란 의료를 뜻하는 메디컬과 호텔의 합성어로, 의료기관 또는 의료관광 대행사가 직영하는 의료관광호텔을 말한다.
정부는 우리나라가 태국이나 싱가포르, 인도 못잖은 의료관광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데 메디텔이 든든한 발판이 돼 줄 것으로 보고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잘만 자리를 잡으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의료기관의 반응이다. 메디텔이 조기에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서비스 주체인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호응이 필수적일 터. 그런데 현재까지 의료계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크게 달가워하는 분위기가 아니란 말이다.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선택진료제(특진제) 적용 대상 축소 등 경영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와중에도 수지 개선을 위한 의료 외 부대사업의 한 방편으로 숙박업을 추진하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외국인 환자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사생활 등 인권 보호를 위해 1인실 또는 특실을 이용케 하고, 보호자들은 따로 제휴 협약을 맺은 관광호텔이나 레지던스를 알선해주는 정도로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실 또는 1인실보다 저렴하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은 객실 이용료도 의료기관 직영 메디텔의 순항을 방해하는 걸림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큰 병원(상급종합병원)에선 1인실의 경우 일반병실 요금과의 차액이 평균 24만3000원에 이르고, 2인실도 12만3000원이나 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호텔보다 작고, 모텔이나 여관보다는 큰 수준의 메디텔은 과연 숙박비를 이보다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의료기관으로선 실익이 없게 된다.
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불투명하다. 기존 호텔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어 지금으로선 손익을 따지기 어렵다. 최근 들어 국내 대학병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먹고 싶어도 뜯어먹을 살이 부족하고, 자칫 이미지만 흐려지는 계륵 같은 존재, 그것이 메디텔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병상가동률이 100%가 된다고 해도 병원은 증축을 먼저 고려하지 호텔을 지어 환자를 더 유치하고 수익 증대를 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A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한마디로 국내 의료기관의 호응이 적어 메디텔은 무늬만 의료관광호텔이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방 환자들의 임시 숙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씻는 것도 중요하다. 규정대로라면 내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메디텔 객실은 전체의 40%다. 총 객실 수 100개의 메디텔이라면 외국인 투숙객이 몇 실을 사용하든 관계없이 최고 40실까지 내국인으로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투숙객이 총 정원의 절반인 50명밖에 안 찼는데, 외국인 10명, 내국인 40명의 비율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이에 대해 외국인 이용객이 적을 때도 메디텔을 유지,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용될 경우 메디텔이 일반 관광호텔과 다를 게 뭐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란 말이 있다. 의사와 약사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구다. 이 말은 메디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외국인 관광객의 의료 욕구는 의료기관이 풀어주고, 그들의 숙박 문제는 호텔리어가 책임지는 것이 순리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