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감옥
입력 2014-02-13 01:36
‘유토피아’를 쓴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영국 국교회를 거부하다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15개월간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망명을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1535년 7월 단두대에 올랐을 때는 사형집행관에게 “내 목이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농담을 건네고,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일이 없으니 한쪽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잠깐만 처형을 늦춰달라”고 여유를 부렸다.
인권운동을 하다 27년4개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72세에 풀려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은 “27년간의 감옥생활이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로벤섬에 수감돼 감옥에서 환갑도 치르고 손녀딸도 안아야 했던 그는 “감옥을 나와 게이트를 통과할 때 70이 넘은 나이에도 내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혹한 일이다. “새장 안에 갇혀 살 수 없는 새들이 있다. 그 깃털은 너무나 찬란했다. 새들이 비상하는 그 기쁨을 빼앗는 것은 죄악이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대사는 그래서 절절하다.
일반인도 그럴진대 수조원 자산을 갖고 수십만명 직원들을 거느린 대기업 회장들에게 감옥은 더더욱 견디기 힘든 곳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등의 죄를 저질렀어도 ‘유전무죄’ 관행으로 실형을 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리 중한 죄라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법칙’에 따라 풀려나곤 했다. 그나마 재판 중에도 병환을 이유로 휠체어에 실려 법정에 나오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의 재벌은 위기에 몰리면 휠체어를 타고 탈출한다’고 비판했겠는가.
경제 민주화 바람으로 재벌 총수에 대한 형 집행이 엄격해지자 재벌들은 감옥 대신 하루에 100만원을 훌쩍 넘는 서울대병원 VIP실로 몰려갔다. 어제 풀려난 한 대기업 총수도 구속기간 1년8개월 중 감옥에 있던 기간은 146일에 불과하다.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됐던 두 재벌 총수가 풀려난 날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해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기부왕이 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저커버그는 실리콘밸리재단에 9억9920만 달러(약 1조700억원)를 쾌척했다고 한다. 너무 다른 두 나라 거부(巨富)의 모습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