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이상화 인생 스토리…7세 때 입문…지독한 연습벌레 ‘2연패’ 새역사 쓰다

입력 2014-02-12 03:35


‘나도 열심히 해서 신문에도 나오고 내용도 자세히 나왔으면 좋겠다. 국가대표도 되고 내 이름을 빛내고 싶다.’

지금은 ‘빙속 여제’로 불리는 이상화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2000년 5월 31일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빙속 여제’라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상화 앞에만 붙는다. 14년 전 꿈 많던 소녀의 바람은 그대로 현실이 됐다. 11일(현지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25?서울시청)는 이 종목 세계 최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상화는 7세때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장에 갔다가 빙상에 입문했다. 1학년 때 쇼트트랙을 타다 2학년 때 스피드스케이팅용 롱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다. 당시 5학년 선배들을 모두 이길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대회만 나가면 상을 싹쓸이했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국내 대회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15세이던 2004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상화는 2005 세계종목별선수권 대회 여자 5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위기도 있었다. 외환위기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이상화는 울면서 “다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고, 가족은 그런 이상화의 뒤를 묵묵히 받쳐주기로 했다. 오빠 이상준씨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그만둘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딸에 대한 지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주니어 국가대표로 뽑혔던 중학교 3학년까지 국외 훈련비용은 은행 대출금으로 보탠 가족이었다. 이상화의 어머니 김인순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훈련 나가는 딸의 도시락을 싼 뒤 하루 종일 티셔츠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아버지 이우근씨도 딸의 장비값은 아낄 수는 없다며 120만원을 들여 선수용 스케이트를 선물했다. 발이 쉽게 부어오르는 아마추어용 스케이트를 신고도 전국대회를 휩쓸던 그녀에게 새 스케이트는 날개나 마찬가지였다.

‘연습벌레’는 이상화의 또 다른 별명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이상화는 2000년 8월 22일자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나쁜 천사는 더 자라고 소리치고, 착한 천사는 빨리 일어나 운동가라고 한다. 매일 천사들의 싸움이 지긋지긋하다. 싸우지 않게 벌떡 일어나야겠다’

1999년 9월 13일엔 ‘무릎을 구부리니 뿌드득 소리가 났고 이상한 느낌이 났다. 그래도 나는 운동을 하러 나갔다’고 적었다.

아쉽게 5위를 차지한 2006년 토리노올림픽 이후에는 여자 스프린터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8㎞ 산악 코스를 사이클로 달리고 170㎏ 바벨을 들고 훈련에 임했다. 남자처럼 강해지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의 ‘꿀벅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국체대 동기인 이승훈, 모태범은 좋은 동료이자 연습 상대였다. 남자들과의 연습을 통해 이상화는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500m에서 예상을 깨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빙속 여제’로 우뚝섰다. 이후로는 이상화 독주체제였다. 부상으로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슬럼프가 찾아들 틈은 없었다. 2012~2013 시즌 월드컵 시리즈 500m 8개 대회 연속 우승으로 첫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 1월에는 36초80의 기록으로 중국 위징의 종전 세계기록(36초94)을 깨트렸다. 한국 여자 빙속선수 사상 첫 세계기록 경신이었다. 그의 질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세계기록을 3차례나 더 갈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11월 월드컵 2차 대회에서 달성한 36초36은 세계신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상화의 라이벌인 예니 볼프(독일)도 그를 인정했다. 이상화가 세계기록을 깨자 볼프는 그에게 다가와 “존경한다”는 말을 전했다. 볼프는 이상화가 밴쿠버올림픽 금메달을 따내기 전까지 500m 1인자로 군림했던 선수다.

한없이 강렬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이상화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예뻐 보이고 싶은 또래 여성들과 다를 바 없다. 이상화는 최근 한 잡지를 통해 흰색 셔츠만 입은 ‘하의 실종’ 패션과 육감적인 몸매를 선보이기도 했다. 취미 생활은 ‘빙속 여제’와 거리가 먼 블록 장난감인 ‘레고 조립’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