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동계올림픽] 이규혁 6번째 올림픽… 金보다 값진 도전기 마지막 레이스… 아름답고 행복하게…
입력 2014-02-12 02:31
“4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제 꿈은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트의 ‘전설’ 이규혁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500m 경기에 출전하기 전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썼다. “지인들이 이번만큼은 즐기라고 하셔서 그렇게 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즐기면서 준비하면 혹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요”라는 글도 남겼다. 이규혁은 이날 메달권과 아주 먼 18위에 그쳤다. 12일 1000m 경기가 남아 있지만 이규혁은 ‘노메달 영웅’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빙상 신동, 6번의 올림픽 도전…메달은 ‘0’=이규혁의 가족은 자타공인 ‘빙상 패밀리’다. 부친 이익환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모친 이인숙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지냈다. 동생 이규현도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1998·2002년 올림픽에 출전했고 지금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그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규혁은 어려서부터 ‘빙상 신동’으로 불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사중 재학 당시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돼 92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종합 21위에 올랐다. 93년 15세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후 이듬해 릴레함메르올림픽에서 500m 36위, 1000m에서 32위를 기록했다.
이규혁이 시니어 무대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건 1996∼1997 시즌부터다. 97년 12월 빙속월드컵 1000m에서 1분10초42를 기록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2007∼2008 스프린트 대회를 2연패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유독 올림픽 메달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94년 릴레함메르를 시작으로 올해 소치까지 총 6번 올림픽에 연속 출전했지만 메달은 번번이 그를 비켜갔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유력한 메달 후보로 거론됐지만 500m 15위, 1000m 9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규혁이 레이스를 모두 마치고 빙판에 한참 동안 드러누웠다가 일어나면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게 힘들었다”는 말을 남겼다. 그 말은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마지막 레이스도 아름답고 행복하게=그래도 이규혁은 또 한번 도전을 택했다. 2011년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우승하고 2012년 같은 대회에서 준우승하면서 “한번 더”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규혁은 “소치는 정말 마지막 올림픽”이라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이규혁은 지난 10일 500m 경기에서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달렸다. 경기를 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오늘 아침에도 1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행복했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고 예전에는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로 즐겁다”고 말했다.
‘5전 6기’의 이규혁에게 격려와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작가 이외수씨는 “메달을 목에 걸어야만 숭고한 것은 아니지요. 국민들께 메달 이상의 가치를 안겨주는 선수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힘을 실어줬다. 이규혁은 메달 대신 올림픽의 가치가 도전정신에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