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선행학습 활개쳐도 규제 법안 ‘낮잠’
입력 2014-02-12 02:32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아들을 둔 김모(50)씨. 며칠 전 아들의 방에서 책상에 놓여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지를 발견한 김씨는 흐뭇했다. 아들이 공부에 의욕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 편성 배치고사 대비용이라는 얘기를 듣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씨는 “수학은 고1 과정, 국어는 5년간 출제된 수능 문제를 배치고사 범위에 포함시켰다더라”며 “입학도 안한 애에게 고교 과정 시험을 보라는 게 말이 되나. 요즘은 다들 이렇게 하냐”고 반문했다.
대전의 한 공립고는 지난달 9일부터 24일까지 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60시간 동안 ‘1차 컨설팅’(선행수업)을 실시했다. 1차 컨설팅 후 시험을 치렀다. 성적 상위 50% 학생들에게 총동창회장 명의의 ‘총동창회 교육기부 프로그램 운영 설명회’ 안내장이 전달됐다. 내용은 시내의 한 학원에서 국·영·수 고교 예비과정을 무료로 수강하게 해주겠다는 것. 대전시교육청은 조사 후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학교와 동창회 측은 “예비 고1용 EBS 교재만 사용하기 때문에 선행학습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공교육 정상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은 학교의 선행교육이 공교육 정상화를 저해하고 사교육 수요를 유발하는 만큼 규제한다는 입장이지만 일선 학교에선 선행학습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당국과 학교 간 마찰은 물론 교육청과 법원의 다른 판단이 불거지는 등 교육현장에선 연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 당국은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립초등학교의 비정상적인 영어교육을 확인해도, 특목고의 교육과정 편법 운영을 적발해도 이를 강력하게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아서다.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선행학습이 필요한 교내 시험을 치를 경우 행·재정적 조치를 내릴 수 있게 하는 등의 관련 법안을 마련했지만 1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지난해 4월 여야는 각각 선행학습을 규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고, 민주당 이상민 의원도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학교의 선행학습을 규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법안소위에서 병합심사하기로 했던 두 법안은 아직 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6월과 7월, 11월과 12월 예정됐던 법안소위가 국회 파행으로 모두 미개의·취소됐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상당수 학교에서 선행학습이 이뤄지고 있으나 위반 시 제재 조치 미흡으로 정책 실효성이 낮다”며 “올해 업무보고에서도 지난해 업무보고처럼 공교육 정상화법을 제정하겠다고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세종=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