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이 투자는 안하고 이자놀이만 하면

입력 2014-02-12 01:41

국내 제조업체의 저축률이 2011년 기준 15.4%로 크게 높아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6.4%까지 떨어져 금융기관 빚을 갚지 못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났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조업체 저축률이 올라간 것을 무턱대고 반길 일은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기업들이 투자는 안 하고 번 돈을 금융기관에 쌓아놓고 이자놀이만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과 1년 이내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자산은 지난해 11월 503조4000억원으로 처음 5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477조원으로 3년새 44%가 늘었다. 공장을 돌아가게 하고, 설비에 투자돼야 할 뭉칫돈들이 은행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 돈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재테크로 돈을 벌려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오죽하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하자는 주장까지 나올까.

지금은 한국 경제를 다시 활기차게 굴러가게 할 기업투자가 절실한 때다. 정부는 지난해 17조원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정부가 쓸 실탄은 바닥난 상태다. 이제는 기업투자와 민간소비가 경제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 가능성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나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등 우리나라 1세대 기업가들은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으로 한국 경제발전의 주춧돌을 놓았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영국에서 차관을 빌려와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짓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이들의 뚝심과 용기가 없었더라면 세계 1위로 도약하지 못했을 테고, 우리나라도 가난한 아시아 변방국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도전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한 기업의 말로가 어떠한지는 노키아와 소니가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규제 혁파를 외칠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을 설득해 실질적인 규제개혁을 관철시키고, 정치권도 이에 협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리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외쳐도 규제를 확실하게 혁파, 개혁하지 않으면 연목구어(緣木求魚)이고 아무 소용없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규제를 풀어야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고,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늘어나 민간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대못 규제나 신발 속 돌멩이 규제를 없애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해외로 나가는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 들이려면 규제를 푸는 것과 함께 유인책을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