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南美서 꽃 피우는 ‘K-미션’

입력 2014-02-12 01:33


어릴 적에 삽으로 땅 끝까지 파면 닿는 곳이 남미 브라질이라고 했다. 글로벌 한국인데도 이곳으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미국 LA를 들러 페루의 리마공항에 내리기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영욕의 땅 라틴아메리카. 돌담에 서린 잉카제국의 영광에 놀라다가 그 위에 들어선 스페인풍 건물에 다시 놀란다. 나라마다 볼리바르 동상이 세워진 것은 식민 극복의 자랑스러운 표징이다.

그렇게 되찾은 나라는 지금 어떤가. 이념도 없이 외치는 반미(反美) 구호는 포퓰리즘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진보의 가치를 잃은 사회주의는 껍데기나 다름없다. 해안과 산등성이 지역의 빈부격차는 하늘과 땅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미치지 못하는데도 실업수당을 월 50달러씩 준다. 선동정치, 중우정치가 판을 친다.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꿈의 봉오리가 채 영글기도 전인 13세 무렵에 첫 아기를 낳는다. 무지와 게으름, 방탕 탓이다. 지난달에 둘러본 에콰도르 과야킬의 뒷골목에는 앳된 엄마들이 아이를 안은 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기 아빠는 대부분 도망가고 없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도 심각하다.

오지서 땀 흘리는 믿음의 전사들

이런 곳에도 어김없이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진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열린 김형준의 콘서트는 만원사례였다. 100달러짜리 R석에서 공연을 즐긴 20대 여성은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의 월급은 500달러다. 남미 어디를 가든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길은 삼성 갤럭시가 도배하고, 길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넘친다. 놀라운 성과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일찍이 이곳에 닿아 역경을 헤쳐 온 동포의 희생이다.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온 초기 선교사들은 낯선 문화와 풍토병을 이기며 이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그가 오실 때, 나는 목화밭 가운데서 무릎을 꿇으리라”고 노래하며 어린이들을 굶주림에서 구하고 상처를 꿰매줬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만난 공호권 선교사는 극한의 삶을 살고 있었다. 파송 20년이 넘은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인데도 아래위 이빨이 다 빠져 틀니를 하고 있었다. 부인 이명진 선교사의 치아 라인도 위태로워 보였다. 해발 3000m 고산도시에 살면서 생긴 질환이다. 그러면서도 불철주야 학교를 세우고, 피임을 가르치고, 희망을 꿈꾸도록 이끈다.

善이 善을 낳는 감동의 순환

희생의 씨앗은 산타크루스에서 열매로 나타났다. 기아대책의 지원으로 청소년 600여명을 떠맡은 김신성-김옥란 선교사 부부에게 주민들이 2만 평방미터의 땅을 내놓은 것이다. 자녀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을 때 공교육의 빈자리를 마침맞게 채워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파종 2년 만에 거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아낌없이 내놓는 선교사에게 마음을 연 주민들은 “언제까지 도움만 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구당 28달러를 갹출하고 축구대회와 바자회 등을 통해 돈을 모아 공동의 부지를 사들였다고 한다. 그들은 땅의 소유권을 마을대표와 선교사 공동명의로 하는 것으로 진정성을 보여줬다. 남은 일은 이곳에 젊은이를 위한 기술학교를 짓는 일이다. 기아대책도 조심스레 돕는 방안을 찾고 있다.

선은 또 다른 선을 낳는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을 맞으며 빈민사목을 하는 홍종애-알프레도 선교사 부부, 집 안에 학교를 차려놓고 아이들을 돌보는 동시에 선교사를 양성하는 홍순임-김연걸 선교사 부부의 숭고한 이웃사랑 역시 탐스러운 결실을 앞두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교의 헌신은 ‘K-미션’이라는 또 다른 한류로 남미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